New York (2017 – 2021)

[2018.05.01]단명

Author
Irealist
Date
2018-05-02 07:49
Views
450

요 근래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시간들이 조금 있었다.
의식적으로 호흡해야 호흡이 되는 증상이다.


증상이 시작된 것은 시카고에 있었을 때였다.

4~5년 전 정도에 하루만에 내 개인돈 1억을 잃은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빚이 3억이 되었을 때, 숨을 쉬는 것이 묘하게 힘들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헉헉하고 숨을 쉬어야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나는, 운동을 너무 안하고 술만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심장과 폐 CT도 촬영해 보았지만 문제가 없었다. 

그러려니하며 버텼다. 술을 마시면 조금 나아서 심할 때는 술을 마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했다. 

검색해보면 공황장애는 강렬하고 극심한 공포가 예기치 않게 밀려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공포가 오지는 않았다. 무서운 감정은 없었다.

그냥 답답한 감정이었다. 아마도 공황장애보다는 화병에 근접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할아버지도 화병에 돌아가셨으니까 아마 그게 맞을 것 같다. 


그러다 2015년에 한국 들어가서 건강이 크게 나빠지고 나서 술을 많이 끊고, 

담배도 끊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심리적으로도 괜찮아졌다. 

와이프와 만나고서부터는 서서히 모든 엉킨 일들이 실타래 풀리듯 풀려나갔다.

3년 내내 조금씩 좋아졌다. 내 안의 스트레스도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증상이 가끔 불시에 며칠간 찾아왔다가 가는 방식으로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의식적으로 쉬어야 한다. 

심리적 공포심은 없다. 그냥 짜증과 화다. 이렇게 적고보니 화병이 맞는 것 같다.

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는데 그 4~5년 전의 일들을 기점으로 이런 간헐적 증상이 생겼다. 


생각해보면 난 참 약한 사람이다. 

군대도 험한 곳을 나오고 고생도 많이 했고 그걸 다 겪어냈으니 강인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약한 사람이다. 나는 그냥 그럭저럭 마지못해 난간에 매달려 버텨왔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강한 사람은 그런 일을 겪으면서 심지를 굳게 다진다. 그리고 왠만한 일에는 데미지를 많이 입지 않는다.

나는 자그마한 일에도 데미지를 입고 큰 일에도 큰 데미지를 입으면서 근근히 버텨간다. 성정이 예민하다.

성정도 예민한데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예민함이 더욱더 많이 생겨나고 화병도 나며 갖은 궁상을 떨었다.

그게 내 본질적인 모습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강한 척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예민하고 약한 인간이다.


유전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우리 친가 사람들은 대대로 사념증(思念症)이 있다. 

아버지도, 삼촌들도, 전부 걱정이 많다. 정말 지나칠 정도로 걱정이 많다. 

나도 무언가에 대해 생각이 지나치도록 많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지나치도록 많다. 

그러다보니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숱한 가능성과 정신이 피로해질 정도로 싸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대로라면 아마도 나는 단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게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내가 이루고자했던 것을 이루는 것이지, 명의 길고 짧음은 큰 상관이 없다.

나는 죽음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죽음은 일평생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다만, 이제 와이프가 있고 와이프의 뱃속에 내 딸이 있으니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딸이야 20세까지 좋은 교육을 주면 내 의무가 끝이지만, 와이프는 그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서라도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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