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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고락

Author
Irealist
Date
2018-03-27 20:28
Views
286

사람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필연적으로 희로애락을 겪는다. 시카고와 홍콩에서 있었던 5년간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트레이딩은 마치 그러한 희로애락을, 정도는 덜하지만 회전은 더 빠르게 매일 체험하는 것과도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열을 느끼고 쓴 맛을 보며 마음이 널뛰기를 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어느 정도 성공한 트레이더들은 모두 도인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장수하는 트레이더들은 저마다 이러한 마음의 불안정함을 이겨내는 방식이 제각기 있었다. 사회초년생이었고 처음 돈을 벌어보던 나는 그렇게 방식을 정립할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다. 주로 술에 절어 살았고, 삶이 피폐해져 갔다. 많이 딴 날은 의기양양해서 기분 좋게 술을 마셨고, 많이 잃은 날은 가슴이 얼얼해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그 변동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알 수가 없는 것은 분명히 트레이더로서 커리어를 잘 쌓고 있는데도 점점 삶이 괴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심리학자가 트레이더들을 상대로 진행한 심리 실험에 대하여 읽게 되었는데, 요약을 하자면 동일한 액수를 번 행복에 비해 잃은 고통이 약 두 배 가량으로 측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많이 잃다가 본전이 되면 기뻐하기는커녕, 이만큼 고생했는데 수익으로 마감해야지 하는 생각에 헤어나지 못하며, 돈을 많이 따다가 본전이 되면, 왜 많이 딸 때 나오지 않았나하며 그것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이는 비단 트레이딩이 아니더라도 삶의 전반에 적용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복권이 당첨된 사람들은 당첨된 돈을 다 쓰고 나면 사실상 예전과 같아졌으니 괴로워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공돈으로 실컷 즐겼으니 만족스러워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잠시 부자되었던 그 시절을 못 잊고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90% 이상 폐인이 되어 버린다.


심리학자의 실험과 복권의 예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은 욕구의 성질이다. 불교에서 욕구를 장잣불에 비유하는데, 욕구는 취하면 취할수록 커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학에서도 한계효용의 법칙, 즉 같은 재화를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그 효용이 떨어지는 법칙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원래 고와 낙, 그 고락이 언제나 순환하여 윤회하고 있는 법인데, 예전과 같은 낙을 유지하려면 점점 더 많은 욕구 충족이 되어야하므로 필연적으로 고통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본래가 괴로운 것이고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일생을 통해 몸부림친다. 대다수는 그 고통이 다름아닌 욕구의 미충족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욕구를 더 충족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고 이에 열심히 노력한다. 끊이지 않는 권력욕, 재물욕, 명예욕, 겉으로 보기엔 다른 갖가지 종류의 욕구가 있지만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 한가지, 그 욕구를 통해 더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욕구의 성질 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고통을 감내하여 욕구를 취했는데 욕구는 이내 만족스럽지 않게 되고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하여 더 많은 욕구를 취해도 예전만 못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결국 끝없이 욕구를 추구해서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를 깨달은 사람들은 육체의 욕구에서 한 단계 벗어나 마음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 한다. 기독교의 경우 인격적인 신을 상정하고, 1)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 것은 원죄 때문이고, 2) 신이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며, 3) 우리가 해야될 것은 이 신을 믿는 것이다는 논리를 구축하고 수천 년동안 이를 공고히 해 왔다.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을 때, 아무 이유없이 고통받는 것보다 응당한 원인이 있으면 그래도 덜 괴롭다. 묻지마 폭행을 당했을 때의 억울함과 분노에 비하면, 내가 불륜을 해 그 댓가로 상대 남편에게 두드려맞았을 때의 심정은 '그래도 맞을 짓 했지'라는 정도다. 그러한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 바로 원죄의 개념이다. 두번째로, 고통이란 끝이 언제인지 안다면 그나마 덜 괴롭다. 납치당해 언제 어떻게 나갈지 모르는 감옥에 있는 것보다, 징역형으로 수감되어 정확히 1년 후 나갈거란 희망이 있는 것이 마음이 훨씬 덜 괴롭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천국과 지옥의 개념을 통해 비록 고통뿐인 삶이지만 그 끝에 낙이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마지막으로, '믿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교리에서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들을 완벽하게 방어한다. 실로 감탄스러운 난공불락의 비논리적 논리 체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돌멩이를 신으로 섬기는 것과 조금 더 나아간 수준의 비합리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라는, 삶의 희로애락에서 벗어나 깨우친 성인이, 당시 0세기의 대중을 어떻게 삶의 고통에서 구원할까 고민하시다가, 아직 대중의 인식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가상의 존재를 창작해냈던 건 아닐까, 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반면 불교에서는 이 삶의 고통이 원죄나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석을 한다. 럭비공은 농구공에 비하면 작지만 테니스공에 비하면 크다. 같은 공이 새것이 되었다가 헌것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순환할 뿐이고, 그 와중에 무언가가 크다 작다 새것이다 헌것이다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일 뿐, 그 본질은 공한 것이다. 사람의 희로애락도 마찬가지다. 따지고보면 슬픔과 기쁨과 괴로움은 그저 인연에 따라 돌고 도는 것이니, 그 섭리를 이해하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을 대비할 수 있고, 나쁜 일이 있어도 그에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또 기다리면 좋은 일이 올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불교에서 해탈하는 것이 대단한 새로운 세상에 향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고, 윤회가 전생과 다음 생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공부해보니 그러한 '종교적인 것'들은 싯다르타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후에 불교가 종교화되면서 부처를 신으로 모시고, 기도를 하고, 전생과 후생, 극락과 지옥의 개념을 가져다 붙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냥 요즘 불교대학을 다닌다. 대학이라고 해서 거창한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 저녁마다 가서 강의를 듣고 오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게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20대에 이런 말씀들을 더 일찍 접했으면 인생이 조금 덜 괴로웠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런 것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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