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7.09.04]석사 마지막 학기

Author
Irealist
Date
2017-09-05 11:54
Views
472

이제 내일부터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마지막 학기가 시작된다.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여정이었다. 그래도 문과 학부를 나와서 이공계로 전향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 현재 GPA는 4.00 만점에 3.96을 받았고 한 과목만을 남겨두고 있다. 여름 인턴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풀타임도 거의 확정되어 간다. 


석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박사할 생각이 꽤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석사를 해 보니, 석사와 박사의 간극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 시간과 기회비용: 석사는 어떤 분야에 좀더 공부하기 위해서 1~2년 투자해 '볼 만한' 것이지만, 박사는 그와는 다른 차원의 커밋먼트다. 최소 5년이라는 시간 투자와, 그 시간 동안 경제적인 기회 비용을 제쳐두고라도, 일단 전체 박사 학위자의 50%만이 졸업을 한다는 그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홍콩에서도 그렇고 뉴욕에서도 그렇고,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가 4~5년 후에 다양한 이유로 졸업을 하지 않거나 못해 애매한 커리어를 갖게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는 박사 '수료'라는 말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박사 졸업을 못하면 그저 석사일 뿐이다. 심지어 3개의 석사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도 보았다. 


2. 열정: 이러한 리스크도 리스크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내게는 없다. 1년 간 데이터 사이언스 공부를 하면서, 정말 온 몸을 배배 꼬면서 했다. 나는 애초에 좋은 학생이 아니다. 좋은 학생이었던 적도 없다. 고교 시절에도, 학부 시절에도 벼락치기만을 하고 게임을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 이번 석사 때도, 정말 진득히 앉아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학문에 매진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말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최소한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빈둥거리며 놀았다. 하지만 그것이 석사까지는 허용이 된다. 박사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업이기 때문이다. 박사에게 있어 공부와 리서치에 소홀한다는 것은 결국 본인의 직업에 소홀한다는 의미가 된다. 돈을 내고 다니는 학사/석사와, 돈을 받고 다니는 박사라는 차이는 학생과 직장인 차이만큼 크다. 나는 그렇게 학문에 매진할 열정이 없다. 언제나 학문은 내게 도구일 뿐이었고, 지금도 내 마음은 업계에 가 있다. 


3. 실력: 열정이 없더라도 순탄히 박사 생활을 헤쳐나갈 수 있는, 그런 천재적인 실력도 내게 없다. 지난 학기 박사 수업을 들으면서 박사생들과 나의 큰 격차를 뼈저리게 느꼈다. 도저히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들 하나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해야하는 양을 재 보니 정말로 까마득했다. 그와 함께, 그 수업에서 열심히 질문을 하고 있던 학부생 하나를 보고 충격먹은 것이 떠오른다. 그런 학생들이 박사를 가는 것이구나.


요즘 글이 너무 두서없어서 뜬금포인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그래도 박사는 할 것이다. 이번 석사 과정동안 40대까지의 인생 계획을 짰고, 그것을 위해서는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열정도 실력도 없지만, 계획에 따라 흘러가다보면 실력도 쌓이고 열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동기는 생길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당장은 또다른 석사를 시작하려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에서는 문과에서 이공계로 넘어갈 때 필요했던 기초적인 수업들도 많이 듣느라 정말 심도있게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지도 못했고, 듣지 못한 수업들도 많다. 그래서 직장에 가서, 일을 하는 동시에 파트 타임으로 석사를 천천히 하나를 더 하려고 한다. 그 파트 타임 석사가 끝날 즈음에 박사를 고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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