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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욕망

Author
Irealist
Date
2020-01-04 22:50
Views
731

가끔은 옛날을 생각한다. 2005년도 일본에서 처음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동기들 모두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도 없었다. 일본행을 택한건 순전히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학비와 생활비를 내가 해결해야 했다. 학비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기 때문에 해결이 되었고, 학점을 잘 따서 한달에 5만엔, 한화로 5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받았다. 내 기억으로 50만원 중에 기숙사비가 20만원 정도가 나갔고, 남은 30만원 중에서 15만원을 식비로 사용하고 15만원은 저축을 했다. 식비를 하루에 5천원꼴을 썼는데, 주로 쌀을 사서 4평 남짓한 기숙사방안의 1인용 전기밥솥에서 밥을 한 후, 엄마가 보내준 밑반찬과 같이 밥을 먹었다. 학교가 산 위에 있던터라 일주일에 한두번 식료품을 팔러오는 트럭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2천원에 파는 고기 몇 점을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때의 나는 정말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 당시의 가용 생활비보다 단위가 다른 수준이지만, 지금도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있고 지금도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함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재 상황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모두 돈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마음의 함정. 내가 지금보다 돈을 많이 벌면 더 행복해질텐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함정. 그러나 이젠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2005년도의 나보다 전혀 더 행복하지가 않다. 2014년도의 나나 2015년도의 나와 비교하면 분명히 행복하지만, 애초에 2014년과 2015년도에 불행에 빠지게 된 것 자체가 더 행복하려고 돈을 좇다 그렇게 된 것임을 감안하면 본전도 챙기지 못한 셈이다.

물론 돈을 더 벌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좋았지만 그 행복감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젠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산다. 플스같은 걸 원하면 그냥 산다. 그러나 그렇게 사서 얻는 기쁨은 중학생 때 3천원씩 용돈을 모아서 게임을 사던 때의 그런 기쁨에는 언저리도 가지 못한다. 욕망의 본질상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의 모든 욕망에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회가 먹고 싶다해서 10일 연속 회를 먹으면 더 이상 회가 주는 효용이 사라진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낄 때는 시골로 가고 싶지만, 시골에서 살다보면 그 곳의 평안이 주는 효용은 적어지고 지루함이 엄습한다. 연애를 할 때는 권태기가 오고 혼자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싶지만, 솔로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새 외롭고 연애욕이 들끓는다.

보스턴과 홍콩에서 2연타로 안 좋은 일들을 겪고, 콜럼비아에서 석사 생활을 할 때 계속 좋지 않은 일이 닥치는 상상이 든다고 적은 적이 있다. 그건 혹시나 심적 고통에 중독되어 버린 내 무의식의 작용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고통과 쾌락은 결국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큰 고통을 겪고 나면 그저 아무 일 없는 일상이 행복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선현들이 중용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예전에는 중용이란 개념이 그저 탐욕을 죄악시하는 선비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깊은 이유가 있음을 느낀다. 현재 나는 중용이란 나의 많은 욕망들의 한계 효용을 매니징하여서 총체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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