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9.11.05]육아에 대한 잡생각

Author
Irealist
Date
2019-11-03 23:03
Views
862

1.

아린이가 6개월차 정도에는 타인을 참 무서워했었다. 그런데 우리와 애착 관계 형성이 점점 잘 되어가면서 타인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와이프는 아마도,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엄마 아빠처럼 본인에게 친절할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마 그랬을텐데, 삶을 살면서 세상에 대한 가정을 점점 더 부정적으로 만들고, 내집단의 폭을 좁혀가는 일방통행의 삶을 살아왔구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누군가와 사이가 틀어지면 그렇게 신경이 쓰일 수가 없었다.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 것인지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20대의 나는 죄책감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죄책감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선 인간 관계 자체가 많이 좁아진다.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활에 이르기까지, 점점 내가 어떤 사람과 맞고 어떤 사람과 맞지 않는지, 나 자신을 잘 알아가면서 그만큼 관계하는 폭도 좁아진다. 결혼생활과 육아는 그것을 더욱더 가속화시켰다. 내가 외향적인 인간이었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었을 텐데, 근본적으로 내성적인 내게 인간 관계라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이미 와이프와 딸에 대해 많은 커밋먼트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대외적인 인간 관계를 지탱할 여력을 유지하기란 힘들다. 그렇게 인간 관계 자체도 좁아지지만, 세상에는 아무런 효용도 없는 소모적인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모든 이의 호감을 살 수도, 살 필요도 없다는 것. 나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과 무슨 일로 관계가 틀어졌을 때, 더 이상 그 관계를 바로 잡아보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지 않는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가끔은 먼저 연락하기도 하는 사람들만 만나도 이미 내 소셜 라이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아마 육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야 그 범위를 좀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어느 육아책에서, 아기가 화가 나거나 울거나 하면서 감정 제어가 안될 때, 아기가 느끼는 감정을 언어화해서 알려주는 것이 나중에 감정 컨트롤 능력을 높인다고 나왔다. "응 우리 아린이가 지금 장난감을 뺏겨서 많이 화가 나는구나"처럼. 그것을 보면서 불교의 '알아차림'과 비슷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을 할 때, 생각을 좇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


3.

부부싸움을 하면 아기의 뇌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뇌의 주된 기능이 사실은 배움이 아니라 생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우리 종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생존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모든 욕구와 쾌락의 기제가 그것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너무나도 크지 않나 싶었다.


4.

딸을 키우면서 처음으로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이 문제는 정말 내가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화두였다. 심지어 외할머니가 나와 누나를 눈에 띄게 차별할 때에도 외할머니가 옛날 사고를 가져서 그렇다는 정도로만 넘겼던 나였다. 그러나 딸을 키워보고 나서야 세상에 대해서 너무나도 불편한 것이 많다는 인식을 하였다. 사실 여성 비하라던가 대놓고 하는 남녀 차별 문제는 이미 미국이나 한국 정도의 성숙한 사회가 되면 가해자에 대한 법적, 혹은 사회적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쉽게 개선될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가장 불편한 부분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은연 중에 심어져 있는, 그래서 내 딸에게도 심어질 수 있는 잠재 의식의 문제다.

예를 들어, 나 스스로도 가끔은 "아이고 여자애가 이렇게 배를 까고 다니면 안돼요"라고 말을 한다던지, 와이프가 옷을 사올 때 항상 여성스럽고 레이스가 달리고 핑크색인 것으로만 사온다던지, 친척들이 "아이고 우리 예쁜 공주님"이라고 부른다던지 하는 소소한 일들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소소하지만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딸아이의 미래를 한정지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남성적인 옷도 고르고, 할로윈에는 미니가 아닌 미키를 입히고, 공주가 아니라 장군이라고 부르고, 곤색 옷을 사 본다. 아직 갓 한 살인데도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조차 이렇게 의식적으로 중화를 해야한다면, 이 아이가 앞으로 20년 사회를 살아가면서 싸워나가야할 편견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내 의식 수준에서 문제시 되는 것들을 이 정도라도 필터링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내 의식 수준이 아직 도달하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와이프도 모르게, 딸아이 본인도 모르게 딸아이의 잠재 의식에 뿌리박혀버릴 편견과 한계들은 또 어떻게 하나, 싶다.


5.

우리 부모님이 그래도 당시로서는 미국 유학하신 깨어있는 사고를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대구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자란 나는 권위에 저항하지 않는 것을 폭력을 통해 학습당해왔다. 어릴적 매일같이 떠들었다고 빠따로 엉덩이를 맞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누나가 방학 미술 숙제를 대신 그려줬다고 따귀를 사정없이 맞고, 외고라는, 그나마 고등학교 중에서는 점잖은 축에 드는 곳에서도 지각햇다고 오리걸음하면서 허벅지에 매를 맞고. 그러다 군대에서 그 모든 것을 재학습했다. 선임에게 복부를 맞고, 응봉 교육대에서 멱살 잡혀서 주먹으로 머리를 맞고, 행보관에게 엎드려 뻗쳐한 자세로 걷어 차이고. 학대를 지속적으로 받아온 개는 주인이 조금만 때리는 시늉을 하여도 부들부들하면서 순종하고 눈치를 본다. 그렇게 순종하고 눈치를 보지 않는 자들 - 한국 사회에서 군대 다녀오지 않았거나 혹은 유학을 다녀온 이들 - 은 그래서 "개념이 없다"는 식으로 매도된다. 그 개념이 없다는 잣대는 결국 무리, 즉 소속 집단의 벨류와 본인의 벨류를 라인업하지 않는 것이 된다. 권위에 대한 순응여부가 그 기준이 된다.

내가 2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미국 직장 생활에서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외국인으로서 주눅이 들어 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든 부분도 있지만,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나 유럽권 국가 사람들은 영어를 못해도 안되는 영어로 큰 소리를 친다. 결국 내가 주눅이 든 이유는 주변인으로서 주류인들이 가진 권위, 나이 어린 사람으로서 나이 많은 사람이 가진 권위에 습성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상대에게 권위를 부여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자라난 환경과 맞물렸다. 결국 나이, 도덕, 그리고 실력이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통성명하자마자 나이를 물어보고 서열관계를 설정해야 모두가 편안한 한국이란 사회에서 자란 나는, 내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는 내가 어른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나보다 어린 회사 동료가 40대, 50대 회사 간부들과 대등하게 장난치고 농담따먹기를 할 때, 나는 그 간부들 앞에서 공손하게 말대답만 하였다.

그런 나를 해방시켜준 것은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다. 누구보다도 도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스스로는 그만큼 도덕적이진 못한) 내게 도덕은 권위를 부여하는 중요한 잣대였고, 외국인 노동자로서 실력밖에 믿을 게 없었던 내게 실력은 또 다른 잣대였다. 보스턴에 있던 시절 내가 교수와 그 박사에게 예, 예, 하다가 반론을 펼치고 비판을 하고 당당히 맞서기 시작했던 시점은 그들이 나보다 트레이딩에 관한 실력도 없을 뿐더러 도덕적인 인간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부터였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연륜도 많은 사람이 그 권위로 불의를 행할 때 저항하는 것을 배우고 좀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나는 평생 그렇게 답습한 권위에 대한 순응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았을까.

여담으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어른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부분은 내가 아린이를 낳으면서 많이 누그러졌는데, 한국 사회에서 애를 낳아야 비로소 어른 취급을 받는 세태와 일치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냥 이런 저런 잡생각을 노트에 메모했다가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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