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9.09.06]홍콩에서 있었던 일 - 8: 룸살롱, 유흥

Author
Irealist
Date
2019-08-29 14:40
Views
3807

8.

Y팀장과 서로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우리는 팀원들에게도 모종의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되었고, Z대표에게의 보고도 서로 조율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전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찝찝하고 의뭉스러웠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안착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한 주, 한 주, 홍콩팀이 운용할 자금을 보내주겠다던 Z대표의 말은 계속해서 지체되었고,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있었다. 자금에 있어서 Z대표의 말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런던의 본사에서 자금을 기다린다고 했다가, 200억이 있다고 했다가, 500억이 있다고 했다가, 3억이면 되겠냐고 했다가, 이야기가 오락가락했다. 언제 한번은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주말 밤에 전화와서 혹시 현금 3억을 주말 동안 가지고 있을 수 있냐고 했다가, 아 아니다면서 끊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렇게 매 주 다른 이유를 대면서 자금을 보내주는 일을 지체하는 것이 반복되어 이미 가을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고, 나는 거의 빚 독촉자가 된 느낌까지 받을 지경이었다.

그 동안 나름 홍콩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홍콩은 한국과도, 미국과도 다른, 묘한 분위기와 정취가 있었다. 밤이 되면 퇴폐적인 환락의 도시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현대적이면서도, 건물들의 외관은 잿빛으로 옛 홍콩 영화의 느낌을 담고 있었다. 홍콩에 도착한 6월부터 두 달간은 여러 호텔들을 전전하다, 홍콩 섬 센트럴의 동쪽에 있는 Tin Hau라는 지구에서 프랑스 교사가 에어비엔비로 내놓은 아파트를 2달 렌트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엄청 괜찮은 리조트형 호텔방의 월세가 불과 140만원밖에 안하길래, 그곳에 4개월 계약을 하였다. 그 리조트방은 펑차우라는 깡촌 시골 섬에 있었는데, 그 때부터 페리를 타고 출퇴근을 시작하였다. 언제나 사람이 미칠듯이 가득차서 몇 번은 그냥 보내야하는 지하철보다, 앉아서 갈 수 있는 페리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못한 것은 찌는 듯한 더위와 습기, 그리고 그 열대 기후에 걸맞는 벌레들이었다. 프랑스 교사의 아파트는 25층 꼭대기였는데도 주먹 절반만한 바퀴와 도마뱀이 나왔고, 펑차우의 섬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바퀴의 크기는 어찌나 큰지 성인 남성 주먹의 절반 면적에 달하는 몸집에 날개까지 달려 있었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두근두근하면서 불을 켜자마자 순식간에 사르락하는 것들을 느껴야 했다. 한 번은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는데 노트북 아래에서 바퀴가 뛰쳐나온 적도 있었다. 그 펑차우의 리조트방에서는 심지어 빈대까지 출몰했다. 빈대라는 개념이 내 머릿 속에서는 속담에나 나오는 이야기였어서, 처음에 모기가 내 다리를 무는 줄 알았다. 그러나 1, 2주가 지나도록 지속적으로 혈관을 따라서 3방이 가지런히 물린다는 점과, 모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간지럽다는 점을 미루어 검색해보니 빈대였고, 기겁하여 매트리스 아래쪽에 약을 쳤다. 그 당시 얼마나 바퀴와 도마뱀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냐면, 약을 친 날 새벽, 농담이 아니라 거대한 사마귀 환청을 보며 소릴 지르며 굴러떨어지듯 일어났다. 두근거리며 불을 켰더니, 바닥에 매트리스에서 달아나는 빈대들의 엑소더스를 목격할 수 있었다. 새벽 4시 경에 리조트 운영진에게 격렬한 항의 이메일을 보냈고, 모든 짐을 싸서 새벽 6시 페리를 타고 섬을 빠져나왔다. 리조트 측은 사과하며, 일주일간 홍콩섬쪽 방을 준비해 주었다.

그러한 해프닝들을 겪으며, 사람들도 종종 만났다.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만났다. 그게 별 차이가 있는 것인가, 싶었다. 아직도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던 어느 날은, 홍콩에서 유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어본 날이었다. 홍콩에 도달한 지 한달 반이 흘렀을 무렵, 홍콩 금융계의 여러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술을 2차까지 마시고, 사람들끼리 어디로 갈까 논의하기 시작하다, 몽콕이란 곳에 가기로 합의가 되었다. 택시를 타고 그곳에 당도하자, 각종 네온 싸인과 야청회라는 간판, 그리고 벗은 여자들의 사진이 즐비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위 말하는 홍등가에 온 듯 했다. 한 사람이 어딘가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포주로 보이는 사람이 자길 따라오라고 하였다. 골목골목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 별도의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넉살 좋아보이고 덩치가 큰 홍콩인이 우리에게 유창한 영어로 시스템을 설명해 주었다. 삼십분에 홍콩달러 400이고, 원하면 더 추가하면 된다고 한다. 홍콩에서 이런 것을 운영하는 건 불법이지만, 소비하는 건 불법이 아니니 경찰이 오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이윽고 여자들이 들어오고, 좁은 홀이 가득 찼다. 같이 간 사람들이, 제일 어린 나부터 어서 고르라고 종용했다. 저는 그냥 2차는 안하면 안될까요, 하는 내 이야기에, 가장 나이 많은 - 평소에는 인망도 좋고 절대로 화내는 일이 없는 부드러운 - U씨라는 분이 아!이씨.. 무슨 소리야, 하고 인상을 팍 쓰면서 나지막하게 버럭 화를 냈다. 난 그 순간이, 그 표정이, 그 대사가 3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도 생생하게 내 뇌리에 박혀 있다. 충격이기도 했지만, 내가 하지 않겠다는데 그게 화낼 일인가, 너무도 의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착해 보이는 여자를 선택해 방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방에는 작은 간이 샤워대, 그리고 콘돔 박스와 클리넥스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으려는 그녀에게, 짧은 중국어로 더듬더듬 말했다.

wo de pengyoumen xihuan zher, suoyi wo lai zher.
나의 친구들 여기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왔다.

danshi wo you nupengyou, suoyi wo bu yao sex.
그러나 나는 여자친구가 있다. 그래서 섹스 원하지 않는다.

women shuo ba.
우리 이야기 하자.

내 발음 문제인지 그녀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더니 휴대폰을 내민다. 휴대폰을 받아드니, 영어와 중국어를 자동번역해주는 어플이 실행되어 있었다. 그곳에 같은 이야기를 영어로 적어서 건네 주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어플에 한자를 입력한다. 영어로 번역된 창에는, you good man,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 우린 30분 동안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라기보단, 휴대폰 어플을 이용해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였다. 그녀가 휴대폰에서 중국의 발라드 노래를 틀고 내게 기댔다. 자기는 26살이며, 중국의 귀주(?)라는 곳에서 왔다고 한다. 고향에는 형제자매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가족 사진을 보여주며 배시시 웃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마을이었다. 전통복장은 몽골의 그것과 유사했다. 본인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내게 보여주려 몸을 기울일 때면, 그녀의 가슴이 내 팔에 닿기도 했다. 가슴골이 다 드러난 그의 옷에 자꾸만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내 마음 속에서 악의 꽃이 피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당시에 와이프와 연애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약혼한 직후여서 내 마음은 봄기운으로 충만했다. 그래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지만, 만일 이런 곳을 계속해서 방문한다면 장담할 수 없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번에는 술자리 분위기를 깨더라도, 혹은 조금은 아웃사이더가 되더라도, 혼자 집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삼십분이 되어 밖에서 똑똑 노크를 해 왔다. 나가서, 흡족한 표정을 한 다른 사람들과 합류했다. 내게 버럭 화를 냈던 나이든 U씨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묘하게 쳐다보면서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삼삼오오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이건 도저히 두 번할 경험은 아니라고.

그러나 U씨가 화를 낸 이유와 내 등을 두드린 이유, 이제는 둘 다 어느 정도 이해한다. 당시의 내가 불편한 것이었다. 내가 홀로 고고한 척, 깨끗한 척하는 것이 불편한 것이었다. 유흥으로 점철된 한국과 홍콩의 금융계 밤문화, 누구나 처음에는 그런 곳은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유흥이 일상인 분위기에서 놀면서, 유흥을 너무나 좋아하는 상사를 모시면서, 그렇게 근처에도 가지 않는 건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나서는 그런 장소에는 가되 적당히 분위기만 맞추고 2차의 매춘까지는 안하겠다고 생각을 하겠지.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그렇게 살얼음판 싸움을 한 두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하며 살아남을 강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가을에, 애인과 싸우고 헤어진 어느 봄날에, 와이프와 사이가 틀어질 때로 틀어져 출장나온 어느 여름밤에, 한 번의 실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 그 어떤 배덕감도, 처음 한 번이 불편하지 두 번째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잊혀지기 마련이다. 아니, 오히려 배덕감은 어느 순간부터는 더더욱 쾌락을 짜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 저질러버린 일에 대해서는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 기제가 작동해서,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의식을 흐려 버린다. 그렇게 일그러진 중년이 된다.

그런데 이 새파란 놈이 깨끗한 척, 고고하게 본인은 2차는 하지 않겠단다. 아직 자금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뭔가 뒤숭숭한 회사란 것을 알 수 없는 그들로써는, 어떻게 이 서른 한 살의 새파란 놈이 홍콩지사장이자, 전무라는 직함을 가진 것인지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말이다. 내 존재는 그들이 걸어온 삶과는 다른 대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대두시킨다. 배덕감을 지우는데 작용한 가장 강력한 방어 기제는, 다들 그러는데 뭐,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해, 직장 생활하려면 어쩔 수가 없어, 라는 논리였으니까. 그렇게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그들 앞에, 매춘을 하지 않고도 그들의 리그에서 성공하는 존재가 있으면 아니된다. 그러면 그들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 결국 본인들의 욕망에 함락당해왔다는,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버럭 화가 나는 것이고, 화를 내서라도 너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관철해야 하는 것이다. 택시를 타려는데 등을 두드리며 묘한 웃음을 짓던 행위는, 너도 우리와 한 배를 탔다는 동지 의식, 웰컴 투 더 리그라는 표현이었겠지.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을 지켰고, 끝내 한 번도 매춘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리그에서 성공하지도 못하고, 처절히 실패했으며,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그저 옆에 앉은 여성에게 손을 대지 않는 정도에 그쳤으니 그들은 그 사실에서 위안을 삼고 자기 합리화를 계속 해 나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그들을 내가 과연 성토할 수 있을까. 매춘이란 행위를 재단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였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르시즘이 너무나도 심했던 나는 실제로 도덕 기준이 강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도덕적 우월감이 주는 쾌감에 심취하기 위해서 매춘을 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고고한 태도를 알량하게 유지했을 테니까. 그러나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은 안다.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내린 결정들은, 결국 내가 맞닦뜨린 삶의 경로와, 내 삶에 들어왔던 숱한 사람들과 상호 교류를 한 끝에 생겨난 우연한 결과물일 뿐이지 내가 특별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인격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특정한 환경에서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나도 망설이며 바지춤을 내릴 것임을. 나라는 인간의 알맹이, 그 본질은 도덕적으로 더 낫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언제나 욕망에 몸부림치면서도 사회적인 관계에서 오는 억제력과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 나르시즘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내가 그 나이든 U씨와 같은 경로를 살아왔으면 마찬가지로 행동하였을지, 아니면 더 심하게 행동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Z대표가 처한 환경과, 그가 그 나름으로 겪었던 고생과, 그리고 그가 느꼈던 행복한 순간들을 느끼며 살아왔다면 그와 마찬가지 선택들을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U씨도 또다른 나, Z대표도 또다른 나, Y팀장도 또다른 나일 뿐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나일지도 모르는 그들과, 그들일지 모르는 나, 그 숱한 나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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