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9.01.21]홍콩에서 있었던 일 - 5: 내부자 거래

Author
Irealist
Date
2019-01-22 00:21
Views
726

5.

그는 내 어린 시절 우상이었으며, 말 그대로의 엄친아였다.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의 아들이자 나보다 5살 위였던 Q형은 서울의 모 외고를 수석입학하여 수석졸업하였으며, 국내 최고의 S대에서 복수 전공을 하면서도 조기졸업을 했다. 군대는 방위 산업체 프로그램으로 국내 최고의 인터넷 기업인 N사에서 마쳤으며, 글로벌 탑 컨설팅 회사인 B사에서 인턴을 하였고, 대학 졸업 후에는 글로벌 탑 컨설팅 회사인 M사의 홍콩지사로 입사를 하였다.

2003년 말, 월가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현실은 경상북도 경산시 갑제동 방구석에서 런닝바람으로 엉덩이나 긁으며 스타크래프트에 빠져있는 고3 수험생이었던 내가 갑작스럽게 일본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제공해준 것도 Q형의 조언이었다. 당시에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내가 Q형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고, 형은 친절하게도 엄청난 장문으로 왜 그것이 힘든지를 알려주었다. 특목고 내신 불리로 인해 S대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S대에서 수석급으로 복수전공 조기졸업을 했던,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 형조차도 미국 취직이 힘들다고 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제 3의 길을 찾기 시작했고, 그 당시 머리로 짜낼 수 있었던 가장 가능성 높았던 시나리오가 대학 4년 중 처음 2년을 일본, 중국, 홍콩에서 보내며 일본어 중국어를 마스터하고, 나머지 2년을 미국으로 넘어가 다국적 기업들에게 4개국어로 어필하는 것이었다.

그 시나리오대로 대학생활을 보냈지만 막상 나중에 취직하려고 보니 외국어는 아무 상관없이 영어나 능숙하게 구사하고 학점 잘받고 인턴하는게 더 중요했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요지는 Q형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그 정도로 컸다는 사실이다. 그런 좋은 조언들을 들은 이후, 아시아를 다니고 군대를 다니느라 딱히 만나뵐 기회는 없었고, 시카고부터 보스턴, 홍콩에 이르는 여정에서는 내 멘탈이 정상이 아니었고 처지도 말이 아니었기에 딱히 찾아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체면이 조금 서는 것 같았고, 형도 마침 미국으로 건너와 W대학에서 MBA를 한 후 월가의 유명 투자은행 G사에서 뱅커로 일하고 있다고 하여 조만간 인사나 드릴가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 Q형이 미국에서 구속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딱히 누구를 통해서 들을 것도 없었다. 미국의 주요 경제지나 신문사는 물론이고 한국의 신문에까지 Q형의 실명이 대문짝만하게 실렸기 때문이다. 죄는 내부자거래였다. 친구의 명의로 주식계좌를 연 다음, 회사에서 일하면서 접하는 클라이언트들의 정보를 토대로 거래를 600번 이상 했으며, 그를 통해 4년간 1억 5천만원 정도의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너무나도 적은 액수였다. 그 정도 연차되는 뱅커라면 못해도 일년에 5억은 벌텐데, 그에 비하면 너무나도 소심한 내부자 거래인 것이다. 미국 업계에서의 반응은 다양했는데, 어떤 이들은 실제로는 윗선에서 훨씬 더 많이 해먹었고 이 수사는 "꼬리 자르기"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한국 금융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본 바로는 그럴 가능성은 적으며 이 건은 그저 보이는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수식어를 붙여야겠지만, 한국에서는 내부자거래라는 것이 애초에 그렇게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한국 금융계에 있는 대학 동기도 다른 친구의 명의를 빌려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에 100% 이상 버는 계좌가 있으면 미국 금감원은 은밀히 조사를 하며 위법 행위가 있는지 확인하지만, 한국 공무원은 개인적으로 연락하여 자기 돈도 맡아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는 우스개소리도 들었는데, 설마 그 정도까지겠나 싶다. 어찌되었든 한국 금융계는 아직 미국에 비하면 모럴 헤저드가 꽤 있는 편이고, 그런 곳에서 발담그고 있던 Q형도, 미국에 와서 아마도 아무런 생각없이 소액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을 것이다.

내부자거래가 성립되는 요건은 1) 주식가격에 영향을 미칠만큼 중요한(material), 2) 공개되지 않은 정보(nonpublic information)를 토대로 주식을 사고 팔아서 금전적 이득을 취했을 경우이다. 사실상 아줌마들이 쉬쉬하면서 건네받는 정보나, 팍스넷같은 곳에서 떠도는 루머들은 모두 2번의 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1번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처벌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런 루머나 정보가 실제로 유효한 정보라서 그에 따라 주식가격이 움직인다면, 그 루머나 정보를 토대로 주식거래를 한 사람들은 내부자거래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거기서 조금 더 복잡해지는 것은, 어떤 식으로 그 중요한 미공개 정보를 접했느냐인데, 몇 다리 건너서 정보를 입수했는지, 우연히 듣게 된 것인지 등이 고려된다. 실제로 미국에서 어떤 갑부가 사용한 방법은, 야구장에서 정보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듯이 떠들고, 본인은 조금 떨어진 뒷자석에 앉아서 그것을 듣는 방식이었는데, 우연히 귓등으로 들은 것이 인정이 되어 무죄 판결을 받은 바가 있다. 따라서 팍스넷같은데서 얻은 정보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더라도 내부자거래 죄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물론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Q형의 경우 본인이 직접 거래하는 클라이언트 회사들의 정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고, 그래서 변론하지도 않고 유죄 인정하는 조건으로 형량 거래를 조금 한 듯하다.

Z대표와 내가 처음으로 부딪히게 된 것도 내부자거래 때문이었다. 부산지부에 있을 때 Y팀장이 Z대표가 대단하다면서 부산지부 사람들과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인즉슨 대표가 사라고 했던 주식이 사자마자 30%가 올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건 그냥 대놓고 내부자거래인데, 라고 생각하며 이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못하면 보스턴에서 겨묻은 개 피하려다가 똥묻은 개 만난 격이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러다 홍콩으로 가기 전날 밤, 서울의 칼호텔(대표는 항상 고급호텔로만 나를 불렀다)에서 둘이서 만났다. 내가 홍콩지부의 5개년 계획을 작성했기에 검토하는 자리였는데, 보고서에는 약 20페이지에 걸쳐 조직 구성, 비전, 성장 단계, 수익 목표, 리스크 관리, 종합 성과 목표, 개별 전략, 포트폴리오 관리, 확장 계획 등을 세부적으로 자세하게 그려놓았었다. 계획서를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Z대표는, 그래서 일년에 몇 프로 낼 수 있어요? 라고 물었다. 트레이더는 절대 수익 퍼센트로 성과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리스크를 많이 질 수록 절대 수익은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내가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 선에서 15~20%라고 답변을 했는데, 그랬더니 Z대표가 코웃음을 치며, 아니 그걸로 도대체 누구 코에 갖다 붙여요?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레버리지의 개념을 설명해야 했다. 레버리지를 늘리면 수익이야 높게 낼 수가 있다. 하지만 일년에 30~40%내려면 어느 정도 잃을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라고 설명을 했더니, 아니 또 그렇게 리스크를 지는 건 싫단다. 자기가 들었던 퀀트 트레이딩 이야기와 다르단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보나마나 저번에 룸살롱에서 여성을 껴안고 있던 T부장이 이야기해준 모양이려니 했다. 리스크가 적게 30~40% 내는 방법이 존재하긴 한다. 예를 들어 T부장이 하는 건 옵션과 기초자산의 가격 괴리를 재정 거래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을 하려면 일단 속도 인프라를 갖추는 비용을 지출해야하므로 리스크를 고정 지출로 바꾸는 것일 뿐이며, 그런 전략들은 전부 capacity의 문제가 있다. 즉 큰 돈을 운용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이 효율적으로 개선되면 금방 사라지는 수익이다.

설명을 아무리 해도 알아먹질 못하는지, "쯧... 알았어요"라며 찝찝하게 만남을 마무리했고, 홍콩으로 가서 지부 설립을 하며 대기하는 동안, Z대표의 카톡 보이스톡 설교가 매일같이 시작되었다. Z대표의 화술이 여간 4차원인게 아니라서, 뭔가 혼을 빼놓듯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다가 우리 한번 잘 해봅시다라고 하면 그저 수긍을 하게 만드는 묘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오간 이야기가, '한철씨는 굉장히 자존감이 높고 그런 것은 좋은데, 업계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서로 인맥도 쌓고 정보도 교류하고 전략같은 것도 공유하고 하세요'라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아니 무슨 퀀트 트레이딩에서 전략을 교류를 해? 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상 Z대표가 원했던 것은 퀀트 트레이딩 정보라기보다는 내부자 거래 정보였던 것임을 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Y팀장의 동태가 점점 이상해져 갔는데, 사무실에서 내가 Y팀장의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알트탭으로 얼른 화면을 숨기는 것이었다. 나처럼 어릴 적부터 부모님 몰래 스타크래프트 등의 몰컴을 하며 알트탭 실력을 단련해왔다면 내게 걸리지 않았을 텐데, 그것이 부족했던 순수한 Y팀장이었기에 나는 이내 그가 숨기고자하는 것이 한국 주식 거래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나의 고뇌가 시작되었는데, 아니 이거, 내가 명목상 홍콩지부장인데, Y팀장이 내 밑에서 엄한 짓을 하면 나도 당연히 처벌받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엄한 짓이 아니라면 알트탭할 이유도 없고, 뭐하냐 물어보면 항상 Z대표님이 시키신 업무 한다고 하는 걸 보면 Z대표에게 정보를 받아서 거래를 하는 것이 뻔해 보였다. 그래서 하루는 점심먹으면서 내가,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정보로 거래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지만 미국이나 홍콩같은 선진국에서는 즉각 구속되는 사유라고 말했다. 순진한 Y팀장은 눈이 커지며 정말요? 라며 놀라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조심해야겠군요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Y팀장의 수상한 동태는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하루는 내가 또 1시간짜리 Z대표의 설교를 듣다가 빡이 쳐서 사무실로 돌아와, "15~20%를 누구 코에 붙이냐고 한 것도 그렇고, 인맥 통해서 전략 공유하라는 것도 그렇고, 대표님이 트레이딩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Z대표에게서 밤에 전화가 와서는, 고래고래 성질을 내며 한철씨가 뭐 그렇게 잘났냐고, 고고한 듯이 그런 정보 공유하는 것도 안하고, 한철씨가 비즈니스 스킬에 대해 뭘 아냐고, 이런 것들 다 하이레벨 스킬이라고 난리법석인 것이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 이쪽의 동태가 새고 있구나. 누군가 이 쪽 이야기를 Z대표에게 보고를 하고 있구나.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구나, 하긴 31살짜리한테 홍콩지사를 맡겨 놓을 리가 없지. 누군지는 자명했다. 미국에서 박사를 하다 온 J씨는 그런 짓을 할 인성이 아니었고, S사원은 이런 일에 연류되기엔 너무나 갓 학부 졸업한 꼬꼬마였으며, 남는 것은 Y팀장밖에 없었다. 이전에 내가 이 회사에 대해서 긴가민가하던 때에, Y팀장에게 Z대표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 어떤 사람이냐 물었을 때, 그는 본인도 잘 모르는데 공모주 투자 관련해서는 업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었었다. 그 때 그의 뉘앙스는 본인도 이 회사에 갓 합류한 사람이라는 식이었었다. 이럴 거면 한철 씨와 같이 일 못하겠다고 화를 내는 Z대표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수화기를 한 뼘 정도 띄워둔 채, 나는 조용히 Y팀장에게 분노했다. 좋고 순수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는 Y팀장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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