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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4]삶을 살아가는 이유

Author
Irealist
Date
2020-07-24 11:58
Views
3681

트레이딩은 인간의 본성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냥 마음 다스리기가 힘들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본성과 역행하는 행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단순히 경험상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뇌과학 연구에서도 밝혀지고 있는 부분이다. 사람에게는 숱한 심리 편향이 있다. 그러한 본성과 편향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계속 갈고 닦아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금새 본성으로 회귀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수익을 냈을 때 겸손해야 하고, 손실을 냈을 때 감정을 추스려야 하며,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을 놓쳤을 때 아쉬워하지 않아야 하고, 손실을 낼 것을 피했을 때 수익을 낸 것과 동일시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트레이딩만 그런 것일까? 맛있는 고기를 지나치게 먹으면 대장이 안좋아지고,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신장이 나빠지며, 담배를 지나치게 피면 폐암에 걸린다. 우리는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 불행해지도록 태어난 모순적인 존재다. 만약 원죄란 게 있다면 바로 이 모순일 것이다. 쾌락 후에는 고통이 있는 반면, 고통 후에는 쾌락이 있다. 쾌락을 먼저 겪으면 고통이 뒤따르지만, 노력이라는 형태로 고통을 먼저 취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쾌락이 뒤따른다. 하지만 결국은 마찬가지로 고락이 윤회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고락의 윤회를 컴팩트하게,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번 느낄 수 있도록 축약해 놓은 곳이 바로 주식 시장이다. 돈을 따면 기쁘고, 잃으면 고통스럽다. 그래서 트레이더들은 그 고락의 사이클을 남들보다 더 고빈도로 겪는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우선 중용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어떤 쾌락이든 지나쳐서는 안되고, 어떤 고통이든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트레이더들이 현자란 것인가? 절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곧바로 수신이 되는 것은 아니고, 머리로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며, 큰 돈이라는 쾌락에 익숙해진 트레이더일수록 오히려 수신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을 중요성을 깨달은 시점부터는, 수신을 해 보려는 노력과 그에 대한 실패가 반복되는 또다른 고락의 사이클에 빠질 뿐이다.

그 반복을 겪으며 11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 불행하도록 태어났는가.

세상의 모든 질문의 답은, 1) 없던가, 2) 혹은 있다.


1. 답이 없을 경우

답이 없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왜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 불행하도록 태어났는가에 대해 딱히 이유가 없다는 말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연이라는 것이고, 우리의 존재로까지 이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우연이란 말이며, 우주는 물론이고 우주를 낳게한 그 모든 근원, 혹은 신이 존재한다면 신까지도 우연의 산물이라는 말이 된다. 그게 아니라 그 일련의 시퀀스 중 일부가 필연이라면, 그 필연을 통해 이 전후의 우연도 불확실성을 추가한 필연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어떤 아이가 엄마에게 혼나고 화나서 개울가에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면, 하필 개구리가 맞은 부분은 우연일지 몰라도 그 이전의 필연으로 죽음을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우연인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불확실성을 추가한 답을 획득할 수는 있다. 여기서는 답이 없을 경우를 가정하고 있으므로, 이 가정 하에서는 세상 만물 또한 우연이므로 고민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답이 없다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답이 있는지 없는지 자체를 확실히 모르는 상태라면 답이 있을 가능성에 의거해 나의 행동을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나고 보니 답이 없는게 진실이었다하면 어차피 우리가 답이 있을 가능성에 의거하여 행동을 했던들, 하지 않았던들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건 매한가지니 손해볼 것이 없고, 지나고 보니 답이 있는게 진실이었다면 우리는 바람직하게 행동한 것이 된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가정하고 믿어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논리와 얼핏 비슷하다. (다만 이 경우의 논리는 틀렸다. 하나님이 없으면 다른 신도 없다는 전제가 참이라면 성립되지만, 알라가 있을 경우 벌을 받을 수 있으니 손해볼 것이 있다)

고로, 답이 없는 경우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생각을 전개해 결론을 그에 따라 행동하더라도, 그 행동의 최적성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2. 답이 있을 경우

답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우리가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 불행하도록 태어난 근본적인 원인과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신이란 존재가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이든 아니면 우주에 내재한 어떠한 섭리든 간에, 어떠한 의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가정 하에 그 의도에 관해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A) 수신이 가능한 인간을 찾는 것, B) 인간이 고가 없는 어떤 것을 찾기를 바라는 것, C) 인간이라는 종은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종으로 넘어가기 위한 진화론적 디자인이라는 것.


2-A 수신이 가능한 인간을 찾는 것

기독교에서 낙원은 이렇게 묘사된다: "특정한 조건을 만족한 인간들이, 이 세상의 종말에 부활하기 전까지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을 겪지 않고 행복을 누리며 머문다고 하는 곳." 고통과 슬픔은 인간에게 내재한 감정인데 어떻게 낙원이라는 외적인 환경 요소를 통해 이를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없다. 그러니 "특정한 조건을 만족한 인간들"이라는 부분은 즉 수신, 자기 절제에 완벽히 성공하여 고락의 윤회에서 벗어난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뇌과학에서 자기 절제를 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전두엽에 회백질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회백질을 늘리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명상이다. 불교에서의 수련, 기독교에서의 기도, 전부다 명상의 일종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 갑니다 > 나 자신을 온전히 망각할 정도의 경지에서 명상을 지속하여, 수신과 자기 절제가 절로 되는 경지에 이르는 사람이 되면,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도 겪지 않고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건 비약일까?

하지만 신이 수신이 가능한 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과정을 통해 가설을 세워볼 수는 있다. 예전의 인공지능 연구란, IF ELSE 구문으로 점철된, 인간이 지시사항을 일일이 코딩하는 식으로 접근했었다. 하지만 요즘 각광받는 머신러닝은, 데이터를 제공하면 알고리즘이 데이터에서 파라미터를 배워서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즉, 인간을 닮은 일반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도, 인간이 인간의 모든 세부 사항을 알아서 그것을 일일이 매핑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기보다는, 어떤 알고리즘 프레임을 마련해 놓고 세상의 데이터를 주입하면서 인간에 가깝게 행동하도록 보정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시기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세상의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숱하게 시뮬레이션하여 주입하면서, 인간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결과물이 어느 알고리즘인지를 찾아내려하는 노력을 반복할 것이다.

신도, 이 세상이라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신에 가까운 - 수신이 가능한 인간을 가려내려는 것이 아닐까.


2-B 인간이 고가 없는 어떤 것을 찾기를 바라는 것

세상의 많은 쾌락 중에는 반드시 고락이 함께하는 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식을 탐구하는 쾌락이다. 수면욕, 나태욕, 성욕, 식욕, 명예욕, 권력욕 모든 욕구들은 탐하면 탐할 수록 1) 고통 혹은 허망함이 뒤따르고, 2)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의해 이후에는 더 많은 욕구를 탐해야만 충족이 된다. 하지만 지식욕은 다른 모든 욕구에서 벗어나 있다. 아무리 탐해도 고통이 뒤따르지 않고,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도 적용이 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의 생물학적 디자인이 신에 의한 것이라면, 신의 의도는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일 것이다. 만약 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것이라면, 유전자가 원하는 의도가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결론은 같다. 둘 다 같은 문을 가리키고 있다. 그 문 뒤가 어떻게 생겼을지, 왜 신 혹은 유전자가 그리로 안내하는 것인지, 우리는 아직 알 수가 없다.


2-C. 인간이라는 종은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종으로 넘어가기 위한 진화론적 디자인이라는 것

우리의 본성의 많은 부분은 진화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지방축적이 더 잘되고 단 것을 좋아하는 것도, 수렵채집 시절 남성과 달리 출산을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 불행하도록 태어난 것도, 이러한 진화 과정에서의 우연한 산물에 불과할 수 있다. 여기서, 진화 과정 자체도 우연의 산물이라 생각하면 파트 1, 답이 없다는 가정 하에 귀속된다. 여기서 우리는 답이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본성은 진화 과정에서의 우연한 산물일지 몰라도 진화 과정 자체에는 목적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제까지 진화가 보여준 목적성 - 더 고등한 지적 생명체를 낫는 것 - 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본성을 따르면 불행하도록 디자인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지적인 발전을 이루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다. 세상에 고통이 없고 쾌락만 있다면, 사람은 아마도 사유하지 않고 쾌락에만 몰두했을 것이다.


더 주저리주저리하고 싶지만 적당히 끊고 여기서 결론을 내리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1) 자기 절제가 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2) 지적 탐구를 하기 위해서, 3) 사유하기 위해서, 세 가지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트레이딩을 계속하면서 수신을 배우고, 심리학과 뇌과학 등 개인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일기도 열심히 쓰면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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