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20.05.20]홍콩에서 있었던 일 - 10: 블랙잭

Author
Irealist
Date
2020-05-20 22:01
Views
2549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런던의 A사 투자자들과 함께 Z대표가 방문하기로 예정이 되었다. 첫날은 마카오 관광을 다 함께 하고, 둘째날 홍콩 오피스에서 미팅을 하는 것이 일정이었다. 그런데 홍콩 팀원들과 마카오가는 페리를 타러 모이고 나서, 내가 바보같이 여권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저녁이라서 집에 다녀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고, 결국 나는 첫날 관광은 빠지기로 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부터의 이야기는 순전히 내가 Y팀장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Y팀장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고 그 자리에 있던 K차장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이며, K차장이 신뢰도에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관계가 백퍼센트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관광을 하던 A사 투자자들과 Z대표, K차장과 우리 홍콩팀원들은 저녁 늦게, 당연하게도 카지노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Z대표는 블랙잭을 치기 시작했다. K차장의 말로는, 처음에는 몇 백씩 치기 시작하였으나 잃기 시작하였는지 그 액수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한판에 3천만원씩 거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의 추정으로는 최소한 수억을 잃었고, 그 잃은 부분에는 홍콩지사에게 건네줄 자금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A사의 투자자들과 Z대표가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도 목격했다고 했다. 정황상 Z대표가 몇 백 따보려다가 계속 잃으니 멘탈이 나가서 본전을 찾아보려다가 회사 자금에도 손을 댔고, 그걸 본 A사 투자자들이 화가 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그 다음날 미팅이 완전히 취소되었고, Z대표는 서울로, A사 투자자들은 런던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에 Z대표는 그 날 미팅을 취소해서 미안하다며 다시 한번 오겠다고 하였고, 2주 후에 온 그는 홍콩으로 오지는 않고 마카오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미팅도 또다시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가 버렸다. 또 다시 2주가 흘렀고, Y팀장이 걱정스럽게 내게 말했다. 대표님이 또 마카오 가신 것 같다고. 본인도 이 회사에 투자한 부분이 있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정말 어떻게 말려야할지 모르겠다고. 총 세 번의 마카오행에서 Z대표는 총 얼마의 돈을 잃었을까. 그리고 그 돈 중의 얼마가 회사 자금일까.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일로 인해서 A사에서 들어올 투자는 영영 물건너 가 버렸고, Z대표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으며, 홍콩팀원들에게 더 이상 월급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와이프와 결혼한 것이 12월 12일이었고, 렌트 계약한지 얼마되지 않는 홍콩의 집에 와이프가 입주한 것이 12월 중순이었고, 월급이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 12월 말이었다. 그래도 이제까지 월급은 꾸준히 나왔고, 투자금도 곧 들어올 것이라고 확답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다 쳐도 와이프, 그리고 처갓집 장인장모님께는 무엇이라고 한단 말인가. 그렇게 되고 나서 약 한달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고 런닝에 팬티 바람으로 열심히 컴퓨터 게임인 롤을 하면서 플래티넘까지 등급을 올렸다. 와이프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아무 생각도 하기가 싫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악이었던 것은, 아직 홍콩법인이 제대로 등록되기 전에 사무실 렌트 계약을 했던터라, 월 2천만원에 달하는 사무실 계약서가 내 명의 앞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약금은 남은 기간 전액인 1억 2천만원에 달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신혼집의 위약금은 남은 8개월어치의 월세에 달했다. 커리어가 막혀버린 나로서 유일한 출구는 석사였는데, 이미 주요 대학들의 지원 시기는 12월초 혹은 12월 말이어서 지원이 끝나 있었다.

그것이 2016년 12월 겨울을 홍콩에서 맞이한, 나의 상황이었다.

Total 0

Total 175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Notice
[공지]뉴욕 재학 및 재직 중 블로그 글입니다
Irealist | 2016.09.11 | Votes 0 | Views 7401
Irealist 2016.09.11 0 7401
174
[2021.05.16]블로그
Irealist | 2021.05.16 | Votes 0 | Views 5633
Irealist 2021.05.16 0 5633
173
[2021.03.26]계획의 다음 단계
Irealist | 2021.03.26 | Votes 0 | Views 3334
Irealist 2021.03.26 0 3334
172
[2020.10.25]양지
Irealist | 2020.10.25 | Votes 0 | Views 3749
Irealist 2020.10.25 0 3749
171
[2020.09.30]앞으로의 계획
Irealist | 2020.09.30 | Votes 0 | Views 3408
Irealist 2020.09.30 0 3408
170
[2020.08.24]명상 18, 19일차: 끝
Irealist | 2020.08.24 | Votes 0 | Views 2575
Irealist 2020.08.24 0 2575
169
[2020.08.16]명상 11일차: 명상의 이유
Irealist | 2020.08.16 | Votes 0 | Views 2476
Irealist 2020.08.16 0 2476
168
[2020.08.08]명상 3일차: 삼시 세끼
Irealist | 2020.08.08 | Votes 0 | Views 2542
Irealist 2020.08.08 0 2542
167
[2020.08.06]명상 1일차: 수신의 심리학
Irealist | 2020.08.06 | Votes 0 | Views 2574
Irealist 2020.08.06 0 2574
166
[2020.07.24]삶을 살아가는 이유
Irealist | 2020.07.24 | Votes 0 | Views 3697
Irealist 2020.07.24 0 3697
165
[2020.07.23]아둥바둥
Irealist | 2020.07.23 | Votes 0 | Views 2591
Irealist 2020.07.23 0 2591
164
[2020.07.07]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유
Irealist | 2020.07.07 | Votes 0 | Views 2866
Irealist 2020.07.07 0 2866
163
[2020.06.15]공부
Irealist | 2020.06.15 | Votes 0 | Views 2666
Irealist 2020.06.15 0 2666
162
[2020.05.20]홍콩에서 있었던 일 - 10: 블랙잭
Irealist | 2020.05.20 | Votes 0 | Views 2549
Irealist 2020.05.20 0 2549
161
[2020.05.08]노력과 행복의 할인율
Irealist | 2020.05.08 | Votes 0 | Views 3445
Irealist 2020.05.08 0 3445
160
[2020.05.03]가사 노동, 데이터 사이언스, 일베
Irealist | 2020.05.03 | Votes 0 | Views 3148
Irealist 2020.05.03 0 3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