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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8]노력과 행복의 할인율

Author
Irealist
Date
2020-05-08 16:43
Views
3423

노력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노력이란 무엇일까? 그 본질은 결국 미래 가치를 위해 현재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고등학생들이 단칸만한 독서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것은, 현재를 즐김으로써 얻는 쾌락과 행복을 포기하여 미래에 더 많은 쾌락과 행복을 누리기 위함이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술 마시는 것도 포기하고 식단도 관리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열심히 축구 연습을 하는 것은, 현재의 그러한 효용을 포기하여 미래에 축구 선수가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더 큰 행복들을 누리기 위함이다. 노력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다. 행위 자체가 고통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쾌락을 포기하면서 참는 고통이다. 본능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은 어려운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사람은 칭송받는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래 가치를 위해 현재 가치를 포기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금수저들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 자체가 보이지 않는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이다. 징역살이 이후 전과 기록 때문에 사회에서 성공을 꿈꿀 수 없는 사람이 미래를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금수저들이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며 타인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는 것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효용을 최대화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미래의 쾌락과 행복이 부모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는 입장에서, 그것을 위해 현재의 쾌락과 행복을 포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정량화했을 때의 수치가 완전히 동일하다면, 굳이 현재 고통을 감수하면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 금융학에서 이자율 개념, 현재 100원이 미래 100원보다 가치가 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만일 현재 100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참아서 미래에 100의 행복을 누릴 사람은 없다. 그건 첫번째로, 미래에도 100의 행복이라면 그것을 참는 고통은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행복의 총량이 100보다 낮게 되는 효과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로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미래에 100의 행복을 얻게 되는 시간까지 어떠한 불확실성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에 동일하게 100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당장 그러는 것이 좋다. 금융학에서 이자율의 개념과 비슷하게 행복의 "할인율"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사람의 행복의 연간 할인율이 10%라면 현재의 100만큼의 행복은 1년 후의 110, 2년 후의 121만큼의 행복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래의 행복에 할인율을 적용한 후의 가치가 현재 누릴 수 있는 다른 행복보다 높다면, 현재를 포기하고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5년 동안 적당히 알바를 하면서 게임이나 하고 연애를 하면 매년 연말에 100의 행복을 얻을 수 있고, 5년 간 모든 것을 참으면서 고시 공부를 해서 5년 후 고시를 패스하게 되면 1000의 행복을 얻는다고 하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라고 하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답은 할인율에 달려 있다. 할인율이 50%라면 5년 후 1000의 행복은 현재 가치로 1000 * (0.5^5) = 31.25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5년간 연말마다 100씩 얻는 행복은 현재 가치로 100 * .5 + 100 * .5^2 + ... = 96.875가 된다. 하지만 할인율이 10%밖에 안된다면 5년 후 1000의 행복은 1000 * (0.9^5) = 590.49가 되고, 100 * .9 + 100 * .9^2 + ... = 368.56가 되어 고시 공부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처럼 동일한 선택을 두고도, 사람마다 미래에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개인적인 행복 할인율에 따라서,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가 달라진다. 오늘만 사는 사람일 수록 할인율이 극도로 높아서 미래의 행복은 현재 가치로는 얼마 안될 것이고,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할인율이 낮아서 미래의 효용을 현재에도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누구는 노력하고 누구는 노력하지 않는지는 세 가지 요소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 첫째, 그 사람이 노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미래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5년 동안 노력하면 월 150만원 주는 중소기업 평사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걸 위해 5년의 고통을 감수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5년 노력하면 사시를 패스해서 판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감수하고 노력할 사람은 많다.
  • 둘째, 그 사람이 노력했을 때, 해당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극단적으로 말해서, 매년 사시를 보는 사람은 10만명인데 임용되는 판사는 한 명이라고 하자. 10만 분의 1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서 5년을 바칠 사람은 없다.
  • 셋째, 그 사람의 할인율이 어떻게 되는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할인율은 극도로 높아서 거의 100% 할인율에 가깝다. 즉, 미래에 어떤 효용을 얻는지는 오늘 얻을 효용에 비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만 사는 사람일수록 미래를 위해 노력할 확률은 적다.

이를 모두 합치면 수식으로

(현재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쾌락) vs (미래 받을 수 있는 행복) x (노력할 시 해당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확률) x (연간 할인율을 감안한 총 할인율) - (현재 노력해서 받을 고통)

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좌변보다 우변이 클 경우,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사람들은 노력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이라 칭송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노력의 고통의 크기와 미래의 행복의 크기를 나름의 할인율과 나름의 확률 계산을 하여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해서 정말로 객관적으로 그게 합리적인 선택일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선택을 할 때에는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린 선택 또한 불합리한 선택일 경우가 많다. 먼저, 위에 든 예시에서는 사시를 패스하면 얻는 효용이 1000이고 알바를 하면 매년 100이라고 수치화를 해 놓았으니 계산할 수 있었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숫자로 비교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로, 사시같은 경우에는 노력하면 얻어지는 것이 판사 지위라는 명확한 보상이 있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그렇게 명확한 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사실임은 명확해도, 좋은 대학이 삶에 주는 효용들 자체는 모호해서 금방 와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학벌의 중요성을 뼈속까지 체감한 부모님이 바라보는 수능 공부의 효용과, 아직 삶을 겪어보지 못한 고등학생 자녀가 생각하는 효용에는 큰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부모님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인데, 현재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효용과 행복을 높여주던지 (서울대가면 뭐 사주겠다) 아니면 공부를 하지 않으면 현재에 받을 고통(용돈 삭감 등)을 늘림으로써 자식에게 있어 좌변보다 우변의 가치가 더 높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내가 왜 뜬금없이 이 글을 썼는지를 잊어버려서 잠시간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더니, 요즘 머리로는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행동은 계속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고, 어떻게 하면 내 스스로가 노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졸지에 써놓고 보니까 뭐, 내게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단지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 효용보다 현재 노력해서 받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다는 합리화가 되어 버렸다.

이쯤에서 정신승리를 하고 싶지만 현재를 바꾸어야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내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보자.

(현재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쾌락) vs (미래 받을 수 있는 행복) x (노력할 시 해당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확률) x (연간 할인율을 감안한 총 할인량) - (현재 노력해서 받을 고통)

위의 수식에서 우변을 더 크게 하기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1. 현재 노력하지 않으면 받을 고통을 늘림으로써 좌변의 가치를 줄인다.
  2. 미래 받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린다.
  3. 노력할 시 해당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확률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4. 행복 할인율도 내 의식의 영역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5. 현재 노력해서 받을 고통도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1번과 2번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1번은 특성상 본인 스스로 하기가 힘들다. 노력하지 않으면 스스로 어떤 고통을 받겠다, 라는 결심을 해서 그걸 지킬 수 있는 의지력이 있으면 애초에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었으면 1번을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해 주셨을 것이지만, 서른 중반 먹은 아재가 스스로 고통을 가하는 건 음.. 보기 좋은 광경도 아닐 뿐더러  가능하지 않으므로 패스. 결론은 미래 받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것 밖에 답이 없다. 여기까지 오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본인이 미래에 성공한 모습을 매일 마음 속에 되새기는 습관이 나오던 것 같은데 그게 참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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