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20.07.07]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유

Author
Irealist
Date
2020-07-07 14:04
Views
2863

심리학 수업을 듣기 시작한지 1년 정도가 되었고, 그 동안 수업을 4개 정도 들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좀 적어보려고 한다.

학부를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트레이딩계에 들어가고 나서, 내가 한참 트렌드에 뒤쳐졌구나란 것을 깨달았다. 그 때는 경영학도들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의 정말 막바지였고, 수학과 컴퓨터 과학 전공자들이 금융계를 주도하는 흐름이 점점 더 증폭되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실을 부정하며, 성공해서 개발자들과 같이 일하면 되지라는 건방진 마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며 내 초기 경력의 5년 정도를 흐름에 거스르는 커리어를 쌓았다.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서야 고집을 꺾고 데이터 과학 석사를 했고, 운이 좋아서 현재의 데이터 과학 흐름에 안착할 수 있었다.

금융학만 알았던 20대의 나는 이미 흐름에서 뒤쳐진 과거를 살고 있었고, 데이터 과학을 공부한 현재의 나는 흐름과 함께하는 현재를 살고 있다. 데이터 과학을 공부한지 5년차, 업계에서 일한지 3년차가 되면서, 내가 흐름을 앞서서 미래를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몇 달 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심리학이었다.

  • 현재 흔히 말하는 AI가 아닌, 진정한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를 이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이 융합을 해야만 한다. 머신러닝은 결국 현상적으로 표출되는 결과를 시간축에 앞서 예측해보려는 시도다. 그것이 AGI로 아무리 확장되고 완벽해진다 해도, 그렇게 나온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가장 할 법한 행위를 가장 잘 근사하는 카피캣일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정신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요즘 성장하고 있는 대안 데이터(alternative data) 업계를 모니터링해 보면, 최근에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부문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행동에 관한 behavioral data이다. GPS를 이용한 유동 인구 데이터, 웹 트래픽과 클릭을 이용한 각종 웹 행동 데이터, 틴더 등의 연애 앱에서 쌓이고 있는 선호 데이터, 게다가 IoT로 인해 스마트 워치 등의 기기들이 보편화되면서 맥박과 혈압 같은 각종 신체 데이터까지. "심리 테스트"로 대변되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심리학은 굉장히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분야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심리학의 성장에 가장 병목역할을 했던 것은 인간 데이터의 부재였다. 아무리 샘플을 많이 확보하려 해 봤자 대부분의 연구가 20명, 30명의 인간 실험체로 단순한 연구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병목이 점점 해소되면서 앞으로 5년, 10년 간 심리학은 어느 학문보다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 MIT와 스탠포드 등 유수한 기관에서 쏟아져나오는 뛰어난 이공계 학생들이 전부 컴퓨터 과학, AI, 데이터 과학 업계로 몰리고 있는 흐름 속에서, 아무리 석사를 했다지만 학부 기본기도 부족하고 박사들만큼의 세부 전문성도 없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다른 학문과의 융합 전문성을 통해서 차별화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 심리학은 이공계 박사들이 가장 접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 컴퓨터 과학, 수학 등은 전부 로직의 점프를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학문이다. 그 어떤 이론도, 엄밀하게 한 단계 한 단계 로지컬한 스텝을 따라 증명을 해 나가는 것이 이들 학문의 근간이 된다. 하지만 심리학은 직관을 통한 로지컬 점프를 해야만 하는 구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학문이니까, 순수하게 행태주의의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 한 문과적인 직관이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거의 10년의 세월 동안 하드 사이언스의 엄밀함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공계 박사들이 심리학을 접근하는데는 어느 정도 무형의 배리어가 있지 않을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베리어가 없더라도 내가 조금은 더 유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 그 외에는 나 자신에 대해 생리학적으로 더 알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딸아이를 갖게 되면서 발달 심리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시작한 것이 심리학 석사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했을 때는 이게 너무나도 내 현업과 동떨어져서 어떻게 응용할지가 막연하니까 흥미도 생기지 않고 꾸역꾸역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뉴로파이낸스 수업을 들으면서 심리학의 효용을 너무나도 많이 발견해서 기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시간나면 적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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