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7.10.24]내성적인 성격과 인맥

Author
Irealist
Date
2017-10-25 05:02
Views
567

1. 

나는 어릴 적부터 극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 처음보는 사람 앞에서는 말조차 하지 않아서, 언제 한번은 아버지가 화가 나서 병원이라도 데려가 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동갑내기 교우 관계에서는 오히려 장난기가 많은 편이어서, 내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친구들은 네가? 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나도 언제, 어디서 내 내성적인 성격이 발동되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각하거나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주로 어른들이 있을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30대가 된 지금에야 처음 보는 사람과 곧잘 말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직까지도 불편하다. 아직까지도 낯을 많이 가린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많은 무리에 가면 뻘줌하고, 할 이야기도 없고, 굳이 머리를 짜내 아이스브레이킹하는 것이 너무도 싫다. 회사 생활하면서 소셜 네트워킹 이벤트, 칵테일 마시는 이벤트, 명절 파티 등이 너무도 뻘줌하고 싫었다.


나는 분명히 좋은 세일즈맨은 못 될 것이다. 살아오면서 이런 부분은 내 콤플렉스였다. 특히나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득을 많이 보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나는 분명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적도 많다. 그래서 살아오며 때때로 나 스스로를 그런 케릭터로 가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스스로 그것이 굳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는 지나치게 사교성과 외향성을 찬미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본인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을 심어준다. 전자는 남성성과, 후자는 여성성과 결부되어 더욱더 확대 재생산된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결코 외향성이 일방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이런 내성적인 부분이 무조건적으로 외향적인 성격에 비해 부정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둘 다 장단점이 있을 뿐인데, 외향적인 성격이 가져오는 장점이 가장 즉효적이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성격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반면 내성적인 성격이 가져오는 장점 - 자기 사색을 많이 한다거나 사귐의 질이 비교적 높다는 점 - 들은 그렇게 바로바로 도움이 되는 결과로 즉시 이어지지는 않기에 자각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나의 부분이 싫지 않다.



2. 

최근 몇 년 간은 이러한 깨달음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30대가 되어서 그런건지, 혹은 결혼을 해서 그런건지 몰라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을 느낀다. 원래 나는 오타쿠같은 기질이 있는 집돌이어서 밖에 많이 나가거나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인간 관계에 에너지를 쏟아왔다. 나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나 상대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과도 그래도 잔정으로, 추억으로 연락하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친한 친구면서도 내게 자격지심이 있고 질투를 하는 사람과도 친구라는 이유로 질척거리게 연락을 유지해 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연을 끊으면 마음 한 켠이 불편하고 울적한 마음도 있고 잔정 때문에 다시 연락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전혀 불편하지도 않다. 


불과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큰 변화다. 그냥 내키는대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인맥은 사람의 가장 큰 자산이라지만 결국 내가 느낀 점은 1) 본인의 인맥은 스스로의 실력만큼 생기기 마련이고 본인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분수에 넘치는 인맥을 억지로 노력해서 쌓아봐야 소용없다는 것, 2) 진심으로, 마음으로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내 마음도 편하고 나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3) 백 명의 사람들과 고만고만한 관계를 쌓는 것보다 열 명의 사람들과 열 배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값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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