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7.10.02]취직 확정

Author
Irealist
Date
2017-10-03 11:10
Views
753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켄쇼라는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이미 기업가치 5000억을 넘어섰기 때문에 사실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배했었던 2016년 봄 즈음, 나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있는 바둑도 그러할진데, 금융계는 과연 어떠할까. 그 음울한 기분을 한층 심화시켰던 것이 바로 이 기사였다.

http://www.nytimes.com/2016/02/28/magazine/the-robots-are-coming-for-wall-street.html?_r=3

(한국어 버전 http://newspeppermint.com/2016/03/23/kensho/)


그래서 내 블로그의 "Data Science" 게시판를 개설한 후 가장 첫번째 글이 바로 이 기사를 스크랩한 글이었다. 이 기사에서는 켄쇼가 어떻게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금융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지, 앞으로 금융업 내 54%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어떻게 대체될 것인지를 다루고 있었다. 전공을 경영/금융으로 선택하여 후회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기사의 내용은 내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다. 이제까지 밟아온 모든 선택들이 잘못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 왜 컴싸를 전공하지 않았나하는 후회가 가장 컸다. 18살부터 나름 10년을 계획한다고 해서 여러 곳을 전전하며 미국 취직까지 온 것들이, 모래성처럼 스르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비록 늦었지만, 늦었다 느낀 지금이라도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를 가야지 살 길이 열린다는 일념으로, 콜롬비아대 어드미션도 겨우겨우 웨이팅 후보로 막판에 받아서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었다.


그리하여 1년, 꿈에도 생각지 못하게 바로 내가 스크랩했었던 글의 회사에 입사가 확정되었다. 면접을 볼 때, 데이터 사이언스에 대한 나의 모든 것은 켄쇼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3일에 걸쳐 1시간의 통계 시험, 4시간의 머신 러닝 시험, 그리고 6시간의 대인 면접 끝에 오퍼를 받았다. 나를 뽑아주신 분은 통계학 박사 후 버클리 교수를 하시다 구글, 페이스북을 거쳐 켄쇼에 참여한 분이셨는데, 그 분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게 필요한 역량은 세 가지 - 통계 지식, 프로그래밍 스킬, 그리고 특정 분야 지식 - 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 중에 처음 두 가지만을 놓고 본다면 나를 1라운드에서 떨어뜨렸겠지만, 금융 분야에서 경험을 쌓다가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를 딴 것을 높게 평가해서 뽑으셨다고 했다. 트레이딩을 하다 지원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몇 달짜리 데이터 사이언스 부트캠프를 듣고 올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로 안도가 되었다. 내 과거에 대한 후회, 왜 학부를 이공계가 아닌 문과로, 경영과 금융으로 했었나, 하는 끊임없는 후회가 그 이야기를 듣고 눈녹듯이 사라졌다. 바로 그런 과거가 있고서 이공계 석사를 했기 때문에 내 이력서는 유니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정말 뛸듯이 기쁘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호사다마를 떠올린다.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른다. 좋은 일이 생길수록 자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일이 안 풀리면서 배운 값진 교훈이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부담도 된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의 데이터사이언스 팀원은 각기 물리학 박사,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이다. 과연 내가 언제까지 금융계의 소프트한 지식으로 이곳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라자드에서 일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우습게도, 취직 전에 한동안 공부에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 취직 확정되고서 다시 책을 폈다. 졸업하고 켄쇼에서 일을 시작하는 1월까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어찌되었든 나는 다시 한번 기로에서 선택을 했고, 이 선택이 나의 남은 30대를 정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하는 곳은 계속해서 뉴욕이 될 것이다. 사무실은 One World Trade Center에 있는데, 뉴저지에서 통근이 편해 뉴저지로 이사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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