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7.10.08]습관과 업보

Author
Irealist
Date
2017-10-09 01:03
Views
467

습관을 고치는 가장 첫번째 단계는 바로 본인의 습관에서 오는 과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삶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정말로 벼락을 맞지 않는 이상 이제까지 내가 한 일들, 해온 습관들과 반드시 인과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있다. 횡단보도의 행인을 친 사고는 우회전시 깜빡이를 키지 않은 습관이 축적되다 발생한 일이고, 폐암 선고를 받은 것은 이제까지 펴온 담배나 주위 환경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며, 버스를 하차하다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일은 이제까지 항상 내리며 뒤를 확인하지 않은 습관이 불러온 사고다.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불러올 수 있는 결과와, 그에 상응하는 확률이 있다. 무단 횡단을 할 경우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0.2%라고 한다면, 무단 횡단을 500번 할 경우 1번 정도 사고날 기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500번마다 확정적으로 일어나는 건 아니고, 한번만 했는데 일어날 수도 있고, 5000번 했는데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무작위성이 존재하고 이는 우리의 습관의 과보를 인정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눈가리개다. 하지만 언제든 무단횡단을 할 때는 내가 이러다 언젠가 일이 터지겠구나하는 의식이 있어야하고, 사고가 났을 때는 운전자만 탓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해온 과보를 일정 부분 받음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본인의 과거와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소매치기에 당하거나, 벼락을 맞거나, 묻지마 칼부림에 다치거나하는 경우다. 하지만 벼락을 맞은 것도, 평소 비오는 날 고지대를 다닌 습관이 축적되어 발생한 결과일 수가 있다. 묻지마 칼부림에 다치거나 소매치기에 당한 일은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지속적으로 다닌 결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다니는 건 나쁜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해야하는 일인데, 그것 때문에 과보를 받는다니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은 자애롭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와 같이 다룬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반드시 선업에 이로운 과보가 따르고, 악행에 해로운 과보가 따르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귀여운 다람쥐가 살쾡이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없을 것이고, 힘센 수컷이 그렇지 못한 수컷을 죽이는 일도, 암컷 사마귀가 수컷 사마귀를 짝짓기 직후에 잡아먹는 일도 없을 것이다. 도덕 관념의 불필요한 투영은 있는 그대로의 인과를 바라보고 그에서 배움을 얻는 것에 최대의 장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그러한 인과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일이 발생한다면 둘 중 한가지다.

첫째는 삼풍백화점과 세월호 피해자와 같은 예에서처럼, 타인의 과보를 받은 경우이다. 어떠한 습관과 업에 대한 결과가 반드시 일차적인 선에서 본인에게 돌아오라는 법은 없다. 인과는 돌고 돌며 전파된다. 그러는 와중에 좋은 인연이 생기기도 하고 악연이 생기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좋은 업이 본인에게 좋게 돌아오리란 법도 없고, 본인의 악업이 본인에게 해롭게 돌아오리란 법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선행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래서도 안되고, 악행을 하지 않으니 해로운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믿어서도 안된다. 그렇게 한다면 이는 원망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둘째는 인과가 있긴 하지만 너무나 약한 경우이다.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는 경우. 세상에는 무작위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말로 0.0000001퍼센트의 원인을 제공하더라도 그에 대한 결과가 하필이면 나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 행위자가 나뿐만이 아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고, 현재 시간축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아닌 무수히 많은 시간축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일이 생긴다면 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의 업보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 어찌보면 삶 자체가 크나큰 업이다. 이러한 일이 생겼을 때는 한 가지만을 명심하면 된다. 바로 내가 그 인과의 연쇄의 시작점이란 것이다.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는 것과 같은 일은 시작은 우연하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 결과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이러한 인과의 시작점인 내가 어떠한 연쇄를 불러일으킬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가서 눈 흘긴다는 것처럼 마음 속의 울화를 풀기 위해 제 3자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2차 피해자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여 그에서 보람을 얻을 수도 있다. 


나쁜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 버렸지만, 어찌되었든 습관을 고치는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습관에서 오는 과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 그 중에서도 불운한 일들의 원인을 나는 계속해서 타인의 탓으로 돌렸다. 보스턴에서 중국인 박사의 부정직함, 그 뒤 홍콩에서 대표의 부도덕함, 그리고 내게 사기친 친구의 말이 앞서는 점. 그러나 많은 것들은 따지고 보면 성질 급하고,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고, 차분히 상황을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좋아보인다 싶으면 조급해지는 그런 내 성격적 습관에서 기인했던 일이다. 20대 초반까지는 운이 좋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그런 것들이 터지지 않았을 뿐,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언젠가는 터질 일들이었던 것이다. 


요즘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쓰다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렸다. 모르겠다 여기까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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