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20.04.07]인과와 무작위성

Author
Irealist
Date
2020-04-07 09:37
Views
812

금융 자산의 수익률을 모델링할 때 가장 기본적인 식은 dS = μSdt + σSΦdX 인데, 이 모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μ 부분은 결정론적(deterministic)이고, σ부분은 무작위적임을 알 수 있다. 직관적으로 금융 차트에 빗대어 말하면, 장기적으로 움직이는 추세가 전자고, 단기적으로 그 추세를 중심으로 무작위적으로 변동하는 부분이 후자다. 다시 말해, 금융 시장의 움직임은 인과에서 오는 움직임과 무작위적인 움직임이 한데 섞여 있다는 말이다. 경제가 발전하니 장기적으로 주식 추세는 상승한다.

문득, 세상의 많은 것들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도 그렇다. 내 삶에서 인과를 형성하는 부분은, 트레이더가 되고자 했다는 것, 미국에 오고자 했다는 것, 그런 것들이 추세를 형성했다. 하지만 무작위성이 그에 관여해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홍콩에 갔다가, 중국에 갔다가 이리저리 변동성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운이라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금융 시장에 다시 돌아가보면, 수 년의 장기적인 움직임을 볼수록 추세가 명확해진다. 즉, 인과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한달, 일주일, 하루, 혹은 몇 분의 차트만을 두고 보면 거의 무작위로 움직이는 가격만 보일 뿐이다. 예전에 인생의 7할은 운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인생에 운이 작용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게 몇 할을 결정하는지는 결국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게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바라고 그 바라는 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무작위성이 작용하여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꾸준히 행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무조건 인과적인 추세가 무작위성을 압도한다.

그러면 실컷 노력해서 성공했는데 갑자기 간암에 걸리는 청천벽력같은 일도 있지 않느냐, 무작위성이란 것의 스케일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것"과 무작위성을 혼돈해서는 안된다. 본인은 본인의 간이 그 정도가 될 줄을 몰랐겠지만, 본인의 생활습관이나 혹은 세대에 걸친 유전이 거대한 인과를 이미 형성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본인이 알지 못했다고 해서 무작위성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무작위성도 거대한 스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벼락에 맞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는 변동성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주식이 다 같은 무작위성의 정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같은 우량주와, 스타트업 잡주의 변동성은 크게 다르다. 후자는 하루에 몇 십 퍼센트씩 움직이는 일도 비일비재하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사람도 다 같은 무작위성을 겪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변동성은 결국 그 사람이 얼마나 리스크를 많이 지고 살아가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본인의 성향이 안전보다는 리스크를 좇는 성향인지도 큰 기여를 할 것이고, 본인의 환경이 어떤지도 기여를 할 것이다. 스위스의 도심에서 태어난 사람이 겪는 무작위성과, 시에라리온의 소년병이 겪는 무작위성은 스케일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 무작위성의 "크기"에는 또 다시 인과가 작용한다. 벼락을 맞는 예로 돌아가서, 어떤 사람이 비오는 날에 등산을 즐긴다면 그건 본인의 삶의 변동성을 높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고, 벼락을 맞느냐 안맞느냐는 무작위성에 달린 것이지만 그 확률이 높아지는 부분은 본인의 행위에 따른 인과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금융 시장에서 좋은 트레이더, 좋은 펀드를 가리는 척도는 단순히 수익이 높은가가 아니고 리스크 대비 수익이 높은가이다. 결국 우리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인과의 추세를 상승 추세로 높이는 한편, 무작위성은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역량보다도 성공의 눈높이가 너무 높을 경우, 즉 트레이더나 펀드 매니저의 역량보다 욕심이 과할 경우, 그 초과 수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변동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트레이딩이 아닌, 도박이 되어 버린다. 20대의 내 삶이 그랬지 않나 싶다. 근본적인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눈높이는 높아서, 안전하고 확실하지만 적당한 성공을 좇기보다는 불확실하고 리스크가 높은 길을 택해서 대박을 쳐 보려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 나는 그랬기 때문에 무작위성에 너무나도 휘둘려서 몸도 마음도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는 그런 요행들이 장기적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리스크를 높여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봤자, 인과의 추세에 의해 금새 제자리로 돌아와 버린다. 그것은 내가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세상의 거스를 수 없는 이치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변동성을 높여 무언가 대박을 쳐 보려 하지 않고, 무작위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인과의 추세를 상승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무작위적인 일들이, 점점 더 좋은 무작위들로 변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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