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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코로나 바이러스

Author
Irealist
Date
2020-04-05 13:36
Views
572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처음에는 강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으로 봤는데, 이젠 그 불이 마을에도 번진 느낌이다. 우리가 항상 장보던 HMart에서 12명의 직원이 양성 판정을 받고 1명이 사망했고, 두번째로 가는 한국 마트인 한남마트에서 직원 한명이 일하다 쓰러졌다. 근처에 유명한 한식당인 H이란 곳의 주인집 모녀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이 위기가 온 몸으로 와닿았다. 한 달 전만해도 식료품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과민반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우리도 그렇게 했어야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1.

지금부터 20년 후, 아린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또 다시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전염병이 시작했다고 하면 와이프와 나는 부리나케 식료품 사재기를 시작할 것이고 아린이는 엄마아빠 왜그렇게 호들갑 떨고 오바하냐고 할 것이다. 개인의 경험의 무게라는 것이 그렇다. 그런 면에서, 북한에 대한 노년층의 반응과, 박정희에 대한 586세대의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그렇게 감정적 양극화가 되어 있는 것도, 격동의 세기를 거치면서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경험의 무게들이 너무나도 달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2.

미드나잇 인 파리란 영화에서 주인공은 낭만보다는 화려함을 즐기고 싶어하는 약혼녀를 뒤로한 채 파리의 밤을 걷다가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현재가 낭만이 없다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과거 시간에서 만난 연인 아드리아나도 그 당대가 낭만이 없다며 그보다도 한 세기 이전으로 가 버린다.

나도 우리 세대가 너무나도 낭만이 없다는 생각들을 자주 해왔던 터라, 그 영화가 더욱더 공감이 되었었다. 사람들이 과거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셋 정도가 있지 않을까 했다. 첫째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 오는 시간들에 대한 한계 효용은 점점 낮아지지만, 두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한계 효용은 점점 높아져만 갈 뿐이다. 둘째는, 인간 소통의 동기화. 편지의 경우 어느 정도의 기다림을 동반하고, 그 기다림의 시간이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 무르익고 숙성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해 준다. 하지만 지금은 SNS나 카톡으로, 바로바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영상통화로 상대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직접 만나고 싶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14시간이면 볼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상대를 만났을 때의 한계 효용을 극대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랍스터를 6개월마다 한 번 먹으면 꿀맛이지만, 하루 3끼를 먹게 되면 냄새만 맡아도 질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한계 효용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마지막 세번째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어떠한 사람과 보낸 시간이 "과거"로 가 버리는 것이 그 시간과 나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한다면, 어떠한 사람의 죽음은 "미래"에 그 사람과 보낼 시간들과 나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한다.

결국 의학으로 죽음을 극복해 나가면서 우리는 미래의 단절을 점점 더 겪지 않는, 반쪽짜리 낭만을 살게 되고, 먼 미래에 타임머신이라도 발명된다면 과거와의 단절조차 겪지 않는, 낭만과 그리움의 완전한 종말을 겪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종종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고고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작 주위에서 죽음을 흔하게 겪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죽음이 멀찍이 있을 때에나 죽음을 낭만화시켜서 생각할 수 있지, 정작 죽음이 일상에 엄습하기 시작하면 그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낭만이고 뭐고 없는 모습이다.


3.

2015년,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해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을 때, 전세계 페이스북 프로필들은 삼색기로 도배가 되었다. 그 몇 년 전부터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서는 100명 가량이 아니라 자그마치 30만 명이 사망했고, 그 중 10만 명가량은 민간인이었다. 그 10년 남짓한 기간동안 시리아에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단 하나도 본 적이 없다. 또한 현재 위구르에서는 중국이 각종 인권유린을 자행하며 추산 100만 명이 되는 위구르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정신교육"을 시키고 있다. 위구르 여자들을 한족 남성과 강제 결혼시키는, 집단 강간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를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 서방 + 알파(한국, 일본 등)의 언론 행태가 이정도 밖에 안되고, 우리 마음 속의 내집단 개념이 겨우 여기까지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코로나 사태가 번지는 것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에볼라 사태였다. 2014년부터 2년 남짓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는 8개국으로 퍼져 3만 명을 감염시키고 이 중 40%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에볼라로 사망하게 되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합병증으로 숨지는 것이 아니라, 눈코입에서 피를 쏟아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사율이 너무나도 높아서 확산이 주춤해질 정도였다. 치사율이 2-3%라지만 어느 정도 심한 독감으로 취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서 자가 격리를 하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를 마주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졌다가 다시 개학을 하였을 때 여학생들이 다수 돌아오지 않아서 조사해 보았더니, 집으로 돌아간 후 성폭행들을 당해 임신하는 바람에 출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는, 내일 먹을 식사보다도 낮은 관심을 에볼라 사태에 보냈었다. 그저 지나가는 강건너 뉴스로 취급했을 뿐이었다.

이제서야 우리의 세계관이 얼마나 "선진국"에 국한되어 있는지 느낀다. 선진국에 살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제 3세계는 나와 같은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그 백분의 일이나마 간접 체험하면서, 조금은 눈이 뜨이는 기분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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