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20.02.23]미래

Author
Irealist
Date
2020-02-23 16:35
Views
703

1 - 과거

처음 이 블로그를 만들었던 17년 전, 그 조잡했던 홈페이지에 적어두었던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어렷풋하게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 국제적인 자선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것이 여러 각도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리란 것은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 꿈 자체가 비현실적이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꿈을 가지고서 살아온 나의 17년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기에 애초에 가능이나 불가능을 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그러나 이 감정은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단순한 후회의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서른 중반, 조금은 자신에 대한 허물을 한 꺼풀 벗겨내고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마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타인의 욕망에 대해서도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단하지 않을 정도까지는 성숙했다. 더 이상 혼자 고고한 척하는 결벽증도 없고, 나르시즘을 갖고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었다. 사람 사는 것, 정말 별거 없구나. 지금의 렌즈로 17년 전의 내 꿈을 들여다보면 18살 꼬마의 위선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사실은 지금 당장 쥐뿔도 없으니까 오지도 않은 미래에서 네 허영과 자존감을 채울 재료를 대여해 오는 것이지. 자선 기구? 사실 정말 원하는 것은 월가에서 돈 많이 버는 거잖아. 돈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면 너무 없어 보이니까, 그 번 돈으로 자선까지 하겠다는 부분을 디테일하게 채워 놓는 것이지.

그래도 그런 알량한 위선 덕에 지금까지 멀리 왔다. 지명도 촌스러운 경상북도 경산시 갑제동 열여덟살 촌놈이 월가에서 일하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월가 이후의 자선 기구니 뭐니 하던 것들이 그정도로 피상적이었기 때문에, 18세의 내 꿈과 계획이 나를 데려다 줄 수 있는 곳은 딱 여기까지일 뿐이다. 서쪽 숲까지는 껍데기만으로는 넘어갈 수가 없다.

자선 기구라는 그 목표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을까.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있었다고 본다.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그렇게 특출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내게 있어서, 내 속의 나르시즘과 충분히 병행 가능했던 감정 중 하나인 동정심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무척이나 풍부한 감정이었으니까. 그러나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힘든 사람을 보면 안쓰러워하는 감정은 그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는 일반적인 본능일 뿐이다. 일반적인 본능을 일반적이지 않도록 미화하여 사명감을 부여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여 내 자의식을 고취시킨 행위의 결과물이 바로 그 인생의 목표와 그에 따른 계획이었다. 딱 그 정도의 진정성이 있었을 뿐, 정말로 꿈을 향해 가는 사람들 - 예를 들어 박지성에게 있어서의 축구, 조수미에게 있어서의 노래 - 에 비견할 수 있는, 열정에 불타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은 번지르르하게 세워 놓고 그것을 10년 이상 따라갔지만, 정작 그 동안 자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동 병원 등에 몇 푼 기부한 것 뿐이었다.

즉, 내게 있어서의 자선 행위란 언제나, 일단은 먼저 내가 충분히 금전적으로 성공하고 나서 (즉, 부자가 되고 나서, 그리고 그 부를 충분히 즐기고 나서) 할 일이었다. 그러한 위선을 지속적으로 합리화시켜준 논리는, 지금 내가 직접 육체적으로 자선 활동을 하면 10 정도를 해 줄 수 있지만, 그 시간에 공부나 다른 준비를 해서 크게 성공한 뒤에는 10000 정도의 좋은 일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성이 있는 꿈은 조건부가 아니다. 부자가 되고 내가 물질적으로 넉넉해야 선심 쓰듯하는 자선 행위는 그저 자의식을 고취하고 배불리는, 나 스스로를 위한 여가 행위일 뿐이지 이타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런 목표와 그런 계획에는, 성공하면 나도 풍요로우니 손해볼 것은 없고, 실패하면 돈을 벌지 못했으니 자선 행위를 못하게 된 것이라는 방식으로 합리화를 할 수 있는 치졸함이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본질을 나 스스로가 17년 동안이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부자가 되는 시점까지의 계획은 30년 가량의 로드맵을 짜둘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그 이후의 자선 기구에 대해서는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자가 된 이후에나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였으니까. 즉, 내가 좇았던 인생의 목표는 부자가 되겠다는 하찮은 목표에 거창한 명분의 덧칠해 놓은 성질의 것이었지, 내 마음 속에 진정으로 남을 돕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 진심은 그저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2 - 현재 I

하지만 정작 내가 서글픈 이유는 단지 17년 전의 나의 위선을 알아채 버렸기 때문은 아니다. 어, 그래 뭐 어때. 17년 전에 17년 전의 내 위선을 알아차렸다면 수치심에 부들부들했을런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엔 안팍으로 낯짝이 많이 두꺼워졌다. 인정할 것은 그저 인정하면 된다. 그래, 부자가 되고 싶다. 그래, 나는 사실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입맛에 맞는 인간만을 사랑한다. 나는 인간이 많은 곳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반면 미워하는 부류의 인간은 많다. 우체국에서 새치기하려는 인간, 운전을 더럽게 하는 인간, 시험치는데 다리를 떠는 인간, 아파트에서 시끄럽게 하는 인간, 차 튜닝을 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인간, 거리에서 길을 막고 수다를 떠는 인간.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인간은 그냥 싫다. 내가 살아온 길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뉴욕이라는 도시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을까.


3 - 현재 II

그보다 내가 서글픈 이유는 단순히, 지금의 내가 17년 전의 나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17년 전의 나는, 아니 17년 전의 나 뿐만 아니라, 16년 전의 나, 15년 전의 나부터 시작해서 불과 수 년전의 나란 나들은 모조리 내가 당시의 나보다 돈을 더 벌어 경제적 여유가 충분히 생긴다면 더 행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사실 마음 한 켠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더 번다면, 지금 날 괴롭히는 많은 고민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아, 이게 자본주의의 덫인가 싶기도 하다. 삶은 원래 본질적으로 그저 고락이 반복되는 구렁텅이일 뿐인데, 자본주의의 특성상 그 고락의 고가 돈을 더 가지면 해결될 것만 같은 여지를 준다. 예전의 나들은 내가 지금의 나만큼만 번다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지금보다도 몇 배로 더 벌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예전의 나들보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지금보다 몇 배를 더 버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행복하리란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서도 일정 연봉 수준까지는 연봉 증가에 비례해 행복도도 올라가지만, (생각보다 낮은) 일정 수준의 연봉이 되면 그 이상의 증가가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은 급격히 미미해진다는 결과가 있다. 그러한 사실을 최근에야 어렷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4 - 미래 I

과거는 그렇다고 치고, 현재도 그렇다고 치자. 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래 나는 그저 부자가 되길 원했던 것이고, 지금도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치자. (물론 솔직히 내가 그 정도로 단순하게 속물적인 인간인 것 같지는 않다) 어찌되었든 이런 상황에서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는 것에 자본주의적 무의식의 함정이 많다고 한다면, 이런 질문을 자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 이미 1조원의 돈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누구나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 달라지는 분만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체제에 치르는 대가가 아닐까.


5 - 미래 II

그런데, 자선 사업하고 싶은 마음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으니까 본질적이 아니라고 까버리고,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자본주의 사회의 영향 탓이니 본질적이 아니라고 까버리고, 그런 식으로 모든 사회적 욕망을 피상적이라고 하나씩 다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원초적 본능밖에 남지 않는 건 아닌가?

아마 내게 1조원의 돈이 있다면 한동안은 맛있는 것 먹고 호화스러운 여행하면서 원초적 본능을 좇겠지만, 그것도 1년이나 갈까 싶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면 부처의 삶이 이해가 된다. 왕자로 태어났으니 사회적 인정의 욕구, 금전적 욕구도 더 이상 충족시킬 것이 없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원초적 본능만 다스리기 위해 고행의 길을 떠난 것이 아닐까. 그래 뭐 나도 1조원의 돈이 생기면 출가나 해야겠다.


요즘 하고 있는 고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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