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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상실감

Author
Irealist
Date
2016-09-25 08:24
Views
642

30대에 들어 인간관계, 특히 친구관계에서 오는 묘한 상실감들이 있다.

무엇이라고 명백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복잡미묘하게 오는 상실감이다.


왜 그런 기분이 드나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먼저, 결혼을 하면서 내 주변에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하나가 더 쳐지게 된다.

친구와 그 무엇을 하더라도, 그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하나의 자아와 같은 존재인 아내가 있다.

결혼한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든, 그것은 아마도 그의 아내와 공유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대일 관계에서 다자간의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

그것은 조금 더 어른스러운 관계인 동시에, 조금 더 먼, 조금 더 격식을 차린, 더 사회적인 관계이다.

고해성사를 한 신부에게만 하다가, 어느 날부터 두 명의 신부에게 한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느낌이 다를까.

얼마나 자신의 치부까지 온전히 소통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가치관의 괴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결혼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소수의 그룹으로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학부생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친하지만, 대학원생들은 몇몇 작은 그룹으로 친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본인의 가치관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세상을 살면서 내가 좋고 싫어하는 것이 점점 명확해진다.

그리고 뻔뻔함도 조금 늘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안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어릴 적에는 그것이 불편해 날 좋아하게 만들려 했으나, 지금은 그냥 무슨 상관이냐며 내버려 둔다.

같이 있으면 재밌고 코드가 맞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싶게 된다.

그것이 편리하지만, 때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세번째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면서가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에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생각했는데 정작 이해하지 못했다. 눈치가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내게 잘해주면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고, 같이 웃고 떠들면 이 친구와 서로 즐거운 줄 알았다.

하지만 시카고, 보스턴, 홍콩에서 5년을 보내는 동안 겪은 일들은 이에 대한 재해석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게 잘해주는 건 단순히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게 이득을 볼 수 있어서일 수도 있다.

같이 웃고 떠드는게 서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단순히 맞춰주는 것일 수도 있다.

금융계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겪으면서, 사람들을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해석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후배가 사실은 그냥 취업 때문에 내게 그렇게 친절했다는 것.

상대는 계속 웃고 떠들지만 사실은 그것이 세일즈의 일환이라는 것.

물론, 그만큼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을 분간할 수도 있게 되었고,

내 인간관계에서 옥석을 좀더 잘 가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질적인 향상을 가져왔으나 어찌되었든 양적으로는 줄어들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모든 이유들이 한데 뒤섞여 은근하게 내게 상실감을 주고 있다.

그럴 때면 그래도 내게 있는 진실한 관계들을 생각한다.

고교 시절, 일본, 990, 파병, 시카고에서 만났던 좋은 친구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다보면,

쓸데없이 감상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샌가 또 머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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