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6.09.18]일상

Author
Irealist
Date
2016-09-18 22:49
Views
652

나는 블로그에 일상에 대해 그렇게 많이 기록을 하지 않는다. 주로 생각들에 대해서만 많이 써 왔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추측한다면 아마도 굉장히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던 나에게 일상이란 건 단순히 채워야하는, 의미가 적은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20대 중반에는 일상같은 건 빨리감기를 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얼른 이런 지루한 과정을 넘기고 큰 성공을 하고 싶고, 그 때부터 재생을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내가 젊어서 실패했던 이유들이 드러난다.

그 반면 종만형 블로그를 예로 들면, 형수님과 아들 이야기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나와 저녁 먹었던 이야기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일상과 사색의 균형이 아주 건강하게 잡혀 있고, 한 눈에 봐도 정말 에너지 넘치는 행복한 라이프를 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형을 작년 초 뉴욕에서 만나고, 올해 다시 뉴욕에서 만났는데, 두번 다 형은 내게 기억하고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렇듯 형은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나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작년에 보스턴에서 실패하고 떠나면서, 세상에 버릴 기억이나 경험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내게 일상만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기억할만한 가치를 갖는 경험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굵직한 성공과 실패의 기억들은 선명하게 뇌리에는 남아 있지만, 내 마음을 울리고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은 그러한 실패와 실패에서 얻은 교훈들보다 값진 것은, 힘들 당시에 본인의 비좁은 원룸에서 함께 살게 해 준 정욱이와의 시간들이었던 것을. 쌀쌀한 시카고에서 퇴근하고서 정욱이와 사케 한 병씩 사들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다가, 안주로 닭똥집을 만들어 먹곤 하던 그러한 일상이 실제로는 가장 소중했다.

일본에서도 예를 들어, 내가 미국 금융계를 꿈꾸며 홍콩, 북경 수학 준비를 하고 SAT를 치던 일들은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실제로 내게 소중했던 것은 중현, 정훈, 지훈이와 함께 수업 끝난 저녁이면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는 100엔 온센에 들렀다가, 마트에서 할인하는 오뎅과 아사히 맥주를 사서 유유히 집으로 오던 저녁의 어스름이 정말로 가슴 아리게 그리운 기억들인 것이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토로하면서도, 결국은 오늘도 일상이 아닌 생각들만 적는다.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뉴욕의 일상에 대해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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