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사리암을 방문했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라, 절에 가면 기도보다는 나 혼자와의 대화를 한다.
사리암에서 하는 그 대화들은 16세 때도, 21세 때도, 27세 때도, 전부 나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고생과, 나의 힘듬과, 나의 포부와, 나의 꿈들이었다.
 
그렇게 이제까지 줄곧 삼십 몇년 동안 나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내가 걷고, 내가 보는 삶은 나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을 터벅터벅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이 산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구나.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고생들은 내 자아가 허물어지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나의 모든 악연들은 내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났던 귀인들이었구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무언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어떻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라는 자아를 서서히 확장해 나가는 의미였구나,
 
또, 나의 천명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 조연과도 같은 역할이 너무나도 가슴 기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