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2017 – 2021)

[2018.11.24]일상

Author
Irealist
Date
2018-11-25 00:35
Views
441

아기를 낳으니 시간이 정말로 빨리 흐른다. 홍콩에서 있었던 일을 빨리 써야지하면서도, 어느 새 한 달이 훌쩍 지나 있다. 출산 후 장모님께서 2달,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한 달을 계셨는데, 2주 전에 가신 후부터 내가 회사 다녀와서 아린이 목욕시킨 후 청소, 설거지, 젖병소독, 빨래 개기 등을 한다. 사람을 쓸까 했는데 저지 시티가 한인이 많은 포트 리로부터 꽤나 거리가 있어서, 하루 5시간 이상하고 170달러가 안되면 일하는 사람이 오기를 거부한다고 한다. 지금 집도 그렇게 크지 않은 원베드룸이라 집안일 할 것도 없는데 그 돈을 주기가 아까워서 일단 와이프와 둘이서 해 보기로 했다. 


그제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공부하는 처남이 뉴욕을 놀러왔다. 그래서 첫날에는 생 랍스터를 사서 랍스터 비스크 스프를 만들고, 랍스터는 쪄서 먹었다. 처남은 8살 아래의 잘생기고 똑똑한 청년인데, 오랜만에 보니 기분이 좋아 거의 일 년만에 과음을 했다. 둘째날에는 미국 추수감사절이라, 칠면조 오븐요리를 하고, 햄도 굽고, 회를 좋아한다해서 뉴저지 북쪽에서 회도 사 왔다. 와이프는 아기 돌보는 것만해도 그로기 상태라, 내가 운전해서 장봐오고, 요리하고, 상차리고, 설거지까지 다 도맡아 했는데, 그렇게 이틀을 보내니 왜 며느리들이 명절을 힘들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처남이 반가운 손님이니 망정이지, 어려운 시댁에서 이런 일들을 주구장창하면 얼마나 죽을 맛일까.


솔직히 그래서 최근에 와이프한테 자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맞벌이하면서 여자만 집안일하라는 건 명백히 비합리적인 차별인데, 나는 외벌이하면서 집안일도 많이 하고 육아까지 관여하고 있으니 역차별인 것 아니냐고 불평을 하긴 했지만, 와이프가 아린이한테는 정말 끔찍히 잘하고 잘 키우고 있으니 사실 이대로도 괜찮다. 모유 수유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새벽에도 와이프가 알아서 깨서 수유하고 기저귀갈고 재우는 동안 나는 밤 내내 자는 걸 감안하면 분담이 나름 잘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회사는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S&P가 켄쇼를 인수한 이후, 우리 팀장님이 능력을 인정받으셔서 CEO 및 CTO 직속의 기업본부로 팀 전체가 옮겨가게 되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월가 쪽으로 출퇴근을 한다. 17살 때 대구외고를 다니면서, 월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미국 금융계에는 있었지만 문자 그대로 월가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군대도 합치면 이제까지 꽤나 많은 직장을 다녀보았다. 군대, 유엔, 삼성증권, 시카고 트레이딩 회사, 홍콩 헤지펀드, 라자드, 켄쇼, 그리고 인수되면서 S&P까지, 총 8개의 직장을 다녔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연봉도 좋고, 복지도 좋고, 업무도 재밌고, 워라벨도 좋고, 팀장님도 좋고, 팀원들도 좋다. 이렇게 여섯 박자가 갖춰지기는 하늘의 별따기인데, 학부 졸업 이후 여러 회사에서 주구장창 스트레스만 받고, 악질 상사 만나고, 회사한테 뒤통수 맞고, 비자 때문에 이용당한 것 생각하면 지옥에서 천국에 온 느낌이다. 그래서 자중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경험으로, 지금의 좋고 만족스러운 시기가 마냥 지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언젠가 이것도 끝날 것이고, 다시 힘든 시기가 언제 찾아올 지 모른다.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이번 가을부터 조지아텍 온라인 석사도 시작을 했다. 완벽히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계속 공부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사실 콜럼비아 데이터과학 석사는 비공대생을 위한 부분도 있는 석사라 조금 말랑말랑했기 때문에, 컴싸 석사를 하나 더 해야하긴 한다는 생각이다. 업계가 너무 빨리 변한다. 나는 그래도 알파고 뉴스 이전에 석사 지원을 해서 낮은 학부 학점에도 불구하고 턱걸이로 들어갔지만, 요즘에는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경쟁률이 하늘을 치솟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젠 박사급이 아니면 좋은 포지션은 발붙이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박사 인력도 과잉이라, 무턱대고 박사가는 것도 리스크가 많다. 그냥 총체적으로 이 업계가 신나면서도 치열하고 힘든 시기인 것 같다. 모든 걸 고려할 때 나는 아마 석사 하나를 더 따고, 파트타임 박사를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무래도 내 전문 분야가 있긴 해야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풀타임 박사로 5년을 가는 것은 부양가족이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 안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업계에서 특정 전문분야에 업계와 괴리된 채로 5년을 보내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육아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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